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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하늘소15
유능한하늘소1522.08.15

발해는 우리나라로 봐야하나요?

최근 역사책을 읽고 발해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발해는 고구려가 패망하고 고구려인들이 세운 나라라고 하긴하는데 국민 대분분은 고구려인이 아니었습니다.

지배계층만 고구려인? 그럼 이 발해를 과거 우리나라라고 봐야하는것인지요? 애매한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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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래 고구려가 멸망한 뒤 대중상이 아들 대조영과 함께 건국하여 처음에 후고구려라 칭하고, 중광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후 대조영이 황제가 되면서 국호를 대진국이라고 변경했습니다. 당시 당나라에서 낮춰부르기 위해 중국 동쪽의 바다인 발해의 국왕이라는 식으로 발해국왕의 책봉을 내렸던 것으로 이후에는 국제적으로 발해국으로 통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도 고려왕이라고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에는 틀림이 없어보입니다.

    "대진국 발해는 당연히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대진국 발해는 고구려가 패망하고 고구려인이 주축이 되어 세운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고구려인이 지배계층이고 말갈인은 피지배계층이었나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고구려의 장수였던 대조영이 주축이 되어 세운 국가이기 때문에 대조영이 왕으로 추대되어 왕족이 되었고 골고루 등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모시몽, 오차지몽, 미발계 등 말갈계 발해 지배층이 기록으로 남아 있고, 대진국 발해가 차지한 영토는 원래 고구려의 영토로 고구려인들이 터전으로 삼았던 곳입니다. 대진국 발해는 고구려계와 말갈계가 혼재된 구조이나 고구려계는 지배층, 말갈계는 피지배층으로 구분되어있었던 것은 아닌 것이죠.

    그리고 대진국 발해의 지배층이 고구려인이나 말갈인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진국 발해의 귀족은 왕족인 대씨(大氏)를 비롯하여 고씨(高氏), 장씨(張氏), 양씨(楊氏), 두씨(竇氏), 오씨(烏氏), 이씨(李氏)의 여섯 우성망족(右姓望族)이라 불리는 유력 귀족집단이 존재하였고 이들이 발해의 외교, 군사, 정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고, 장, 이는 고구려계, 오, 양은 말갈계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두씨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 외 하(賀), 왕(王), 임(任), 해(解),수(受), 율(聿), 배(裵), 박(朴), 최(崔) 등의 부여계, 고구려계, 말갈계를 비롯한 중국계, 신라계도 포함된 49개 족성(일반귀족)이 존재하였다고 합니다.

    중국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고구려와 대진국 발해의 역사를 자기네 중국의 속국 정도로 치부하며, 어이없이 현재 자신들의 중국 영토에서 존재하였던 모든 국가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몽골의 징기스칸도 자신들의 역사라고 하죠^^. 현재의 중국은 많은 외세의 지배를 받았던 혼란의 땅이었습니다. 여러 민족들이 중국의 땅을 지배했었지요. 중국이 한족이 주축이라고 한다면, 수, 당의 선비족, 원은 몽골족, 청은 여진족, 고조선때는 우리 민족이 현 중국 영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죠.

    현재의 자기네 영토가 넓다고 해서 그 지역의 모든 역사가 자기네 역사라고 하며, 현재 독립국으로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다 중국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망언입니다. 최근 발견된 과거 대진국 발해 지역의 황후 무덤에서 비석에 발해의 '순목황후'라는 말이 나옵니다. 대진국 발해가 당시 당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었다면, 당의 황제가 있는데 황제의 아내라는 황후라는 말을 쓸 수 있었을까요? 해당 무덤에서는 고구려의 유물들이 출토되었고, 문자 기록이 있는 묘비가 있는데 자세히 공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유는 아마도 자신들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에 유리한 내용은 아닐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유리한 것이라면 벌써 발표하고 난리가 났겠죠.

    고구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대진국 발해 모두 우리 조상들이 세운 자랑스런 우리나라입니다. 동북아시아의 여러 민족이 함께한 나라였던 것입니다. 고구려는 구당서에도 요서지방을 중심으로 동서로 3천1백리, 남북으로 2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식민사학으로 가득 찬 우리 교과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당시 고구려의 영토보다 훨씬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고 중국의 사서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학자들이 이상한 것이죠.

    역사는 모든 나라와 연관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역사가 모두 자기네 역사는 아니죠. 사료들도 확실하지 않은 것들도 많고 없는 것들도 많아 증명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역사를 존중하며, 자기네 역사와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으로 역사의 조각을 맞춰 가야하는 것이지 모두 내 것이야 하는 중국의 행태는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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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육아·아동전문가입니다.

    고구려지배층이 나라를 세웠고 고구려 문화를 보였으며 일본에 보낸 국서에도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했지요. 사실 광개토대왕이 만주를 호령했을 때에도 많은 피정복민은 이민족, 말갈인이 많았습니다. 발해의 피지배층도 말갈인이죠. 속지주의 즉 영토를 기준으로 보면, 중국의 지방정권이 되는 것이고, 역사주의 입장에서면 우리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발해 멸망 후 일부이지만 대광현 등의 세력이 고려에 흡수도 되었습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편견은 위험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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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음같은면 우리나라로 봐야 하겠지요.

    그러나 국제 관계상 잃어버린 나라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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