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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말똥구리
땅속의 말똥구리23.06.06

조선시대 유배지는 보통 어디였나요?

옛 조선시대에는 죄인들에게 유배라는 형벌을 내렸는데요.

보통 유배지라고 하면 지방산골이라고 하는데요.

유배지로 많이 가는곳은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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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의 유배지는 대체로 외진 섬이나 궁벽한 산골 등으로, 대표적인 유배지로는 강화도, 제주도, 울릉도 등이 있습니다.

    1. 강화도: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강화도는 가장 대표적인 유배지로, 조선의 중요한 정치인들이 많이 유배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정치적 쟁점이 되었던 조광조가 유배된 곳입니다.

    2. 제주도: 제주도 역시 많은 유배인들이 보내졌던 곳입니다. 제주도는 그 위치가 본토에서 멀고, 그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취약했기 때문에 유배의 목적에 맞는 곳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유배를 통해 향토문학인 탐라문학을 선도한 허균이 유배된 곳입니다.

    3. 울릉도: 울릉도 역시 외진 섬이라는 점에서 유배지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강원도 일대나 경상북도 일대 등 산간지역, 외진 섬 등이 유배지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곳들은 교통이 불편하고 생활환경이 힘들었기 때문에 형벌의 일종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이러한 유배는 단지 처벌만이 아니라, 때로는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인물들을 멀리 보내 제거하는 방식으로도 활용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귀양지 자체는 사람이 살기 힘들고 험준한 지역을 고르는데, 함경도의 삼수, 갑산 등의 조선의 최북단 지역 혹은 제주도나 흑산도를 비롯해 강화 교동도, 전라남도 완도, 보길도, 추자도, 부산 가덕도, 경상남도 남해도, 거제도 같은 섬으로 결정되는 일이 많았으며 당시 한양에서 남으로 멀리 있으면서 제주도로 향하는 주 기착지역할을 했던 전라도 강진 등도 주 유배지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배형(流配刑)은 중벌에 속하지만 사형보다 가벼운 범죄자를 처벌하는 형벌입니다. 유배형은 주로 관료 및 양반 등의 정치범에 대한 처벌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평민이나 천민에게 언도되기도 했습니다. 귀양으로 알려진 유배형은 먼 지방으로 부처(付處)되어 그 지역에 격리되는 일종의 자유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유배형은 처벌 기한이 특별히 정해지지 않아 죄인에 대한 국왕의 특별 사면인 해배(解配) 명령이 없으면, 죽을 때까지 유배지에서 평생을 보내는 무기형이었습니다. 유배형은 죄의 경중에 따라 2,000리, 2,500리, 3,000리 등 거리에 따라 3등급으로 구분하는데, 이는 단독으로 집행되기도 하였지만 대체로 장형(杖刑)을 수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배형의 거리 규정이 『대명률(大明律)』 규정에 따른 것인데, 조선의 지리적 조건과 맞지 않아 시행 초 혼선을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때문에 1430년(세종 12) 조선의 실정에 따라 각각 600리, 750리, 900리 등으로 유배 거리가 조정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3,000리 형이 원칙대로 적용되어 전국을 순회하거나, 여러 고을을 옮겨 총 거리를 합산해 채우기도 하였습니다. 예컨대 1776년(정조 1) 정조는 불경한 상소로 그의 심기를 건드린 김약행에게 사형을 감해서 유(流) 3,000리를 언도해 기장현으로 보냈습니다. 3,000리를 채우라는 정조의 특명에 의금부는 서울→기장현(970리)→강원도 평해(400리)→함경도 안변(940)→단천부(690리) 등으로 3,000리가 정확히 반영된 코스를 정한 사례도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에는 주로 전라도 지방과 제주도 지방이 유배 지역이 많았습니다. 가장 혹독한 곳으로는 아무래도 삼수, 갑산과 같은 함경도 변경 고을이나 전남 강진이나 흑산도, 추자도,외딴 섬을 들 수 있다고 합니다.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인 제주도는 본토와 격리된 절해고도(絶海孤島)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조선시대 많은 관리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