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칠석은 실화인가요? 설화인가요?
오늘이 칠석인데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로 알고 있어요
실화인가요 설화인가요?
그리고 어떤 의미가 있는 날인가요?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설화에 가깝습니다.
최남선의《조선상식(朝鮮常識)》에는 칠석은 원래 중국의 속절(俗節)로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공민왕(恭愍王)은 몽고 왕후와 더불어 내정에서 견우·직녀성에 제사하였고, 또 이날 백관들에게 녹을 주었으며, 조선조에 와서는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절일제(節日製)의 과거를 실시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다양한 생활주기와 가치관의 변화 속에서 오늘날 칠석의 풍속은 다만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동심의 세계에 꿈을 부풀리는 기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으며
중국 한대(漢代)의 괴담(怪談) 을 기록한 책인《재해기(齋諧記)》에 이러한 이야기가 전하여 지고
있는걸로 보아서 아마도 중국에서 전하여졌고 우리나라에서 우리정서에 맞게 변형되어 전하여 진거라 생각됩니다.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칠석(七夕)의 유래는 중국의 『제해기(薺諧記)』에 처음 나타난다. 주(周)나라에서 한대(漢代)에 걸쳐 우리나라에 유입되기까지 윤색을 거듭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설화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옥황상제가 다스리는 하늘나라 궁전의 은하수 건너에 부지런한 목동인 견우가 살고 있었다. 옥황상제는 견우가 부지런하고 착하여 손녀인 직녀와 결혼시켰다. 그런데 결혼한 견우와 직녀는 너무 사이가 좋아 견우는 농사일을 게을리 하고 직녀는 베짜는 일을 게을리 했다. 그러자 천계(天界)의 현상이 혼란에 빠져 사람들은 천재(天災)와 기근(饑饉)으로 고통받게 되었다. 이것을 본 옥황상제가 크게 노하여 두 사람을 은하수의 양쪽에 각각 떨어져 살게 하였다.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애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까마귀와 까치들은 해마다 칠석날에 이들이 만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늘로 올라가 다리를 놓아주니 이것이 오작교(烏鵲橋)이다.
견우와 직녀는 칠석날이 되면 오작교를 건너 서로 그리던 임을 만나 일년 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고 다시 헤어져야 한다. 칠석 다음날 까마귀와 까치의 머리를 보면 모두 벗겨져 있는데 그것은 오작교를 놓기 위해 머리에 돌을 이고 다녔기 때문이라 한다. 칠석날에는 비가 내리는데 하루 전에 내리는 비는 만나서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고, 이튿날 내리는 비는 헤어지면서 흘리는 슬픔의 눈물이라고 한다. 또는 낮에 오는 비는 기쁨의 눈물이고 밤에 오는 비는 슬픔의 눈물이라고 한다.
이 설화의 배경은 독수리별자리[鷲星座]의 알타이르(Altair)별과, 거문고별자리[琴星座]의 베가(Vega)별을 가리키는 것으로 두 별이 은하수의 동쪽과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데서 유래한 듯하다. 이 두 별은 태양 황도상(黃道上) 운행할 때 가을 초저녁에는 서쪽 하늘에 보이고, 겨울에는 태양과 함께 낮에 떠 있으며, 봄날 초저녁에는 동쪽 하늘에 나타나고, 칠석 무렵이면 천장 부근에서 보이게 되므로 마치 일년에 한 번씩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견우성과 직녀성이 일년에 한 번씩 마주치게 되는 천문 현상은 중국의 주(周)나라 때부터 인식하고 있었으며 한(漢)나라에 이르러서 칠석 설화가 형성되고 여러 가지 풍속이 발전하였다.
우리나라도 일찍이 삼국시대에 이 설화와 풍속이 있었던 듯하다. 고구려 고분 벽화 가운데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구역에 있는 덕흥리 고분 벽화에 견우와 직녀 설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그림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기록에는 고려 공민왕이 왕후와 더불어 칠석날 궁궐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에 제사하고 백관들에게 녹을 주었다고 하였고, 조선조에 와서는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절일제(節日製)의 과거를 실시한 기록이 있다. 궁중 밖의 민간에서도 칠석의 풍속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모습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의 문헌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칠석날 민간에서는 여러 가지 풍속이 행해졌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옛날 서당에서는 학동들에게 견우직녀를 시제(詩題)로 시를 짓게 하였다. 또 옷과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폭의(曝衣)와 폭서(曝書) 풍속이 있었다. 여름 장마철에 장롱속의 옷가지와 책장의 책에 습기가 차면 곰팡이가 끼게 되므로 이를 막기 위한 것이다. 한편 여인들이 직녀성에 바느질 솜씨를 비는 걸교(乞巧) 풍속이 있었는데, 걸교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한 풍속이다. 칠석날 새벽에 부녀자들이 참외, 오이 등의 과일을 상에 올려놓고 절을 하며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빈다. 저녁에 상 위로 거미줄이 쳐 있으면 하늘에 있는 직녀가 소원을 들어준 것이라 여기고 기뻐한다. 다른 지방에서는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그 위에 재를 담은 쟁반을 올려 놓은 뒤, 별에게 바느질 솜씨가 좋게 해달라고 빌고 다음날 아침 재 위에 흔적이 있으면 영험이 있어 바느질을 잘하게 된다고 믿었다.
별과 조상과 자연과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풍속도 지역과 가정에 따라서 행해졌다. 지역에 따라서 칠석제, 용왕제, 밭제 같은 제사를 지내고 사당에 천신(薦新)하며 밀국수, 밀전병, 호박도래전 등 시절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칠석음식으로 밀전병을 만들어 먹고 칠석놀이라 하여 술과 안주를 갖추어 가무로 밤이 깊도록 놀기도 한다.
출처 : 한국세시풍속사전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설화 입니다. 실제 존재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진 않습니다
중국의 재해기 란 책에 처음 나타났으며 주나라(기원전 11세기)에서 한대(기원전200년)에 걸쳐 우리나라에 유입되었습니다.
음력 7월 7일을 나타내는 날로 아시다시피 견우와 직녀 설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어떤의미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연인의 날이라 하여 데이트를 즐기는 날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도움이 되셨길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칠석은 저녁에 은하수의 양쪽 둑에 견우성과 직녀성이 1년에 1번 만나는 날로, 전설에 따라 별을 제사지내는 행사지냅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칠석은 한국 중궄일본에 전해져오는 전설로 해마다 음력 7월7일(일본은 양력 7월7일)에 제사를 지내는 명절입니다. 옛날에 견우와 직녀의 두별이 사랑을 하다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서 1년에 1번씩 칠석 전날 밤에 은하수를 건너 만났다는 전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때 까치와 까마귀가 다리를 놓아 만났는데 이를 오작교라고 부릅니다. 칠석 때는 더위도 약간 줄어들고 장마도 거친 시기이나 칠석 때 내리는 비는 칠석물이라 부르고 이 시기에는 호박도 잘 열고 오이나 참외가 많이 나올때여서 민간에서는 호박부침을 만들어 칠성님께 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