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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센때까치29
굳센때까치2924.01.15

조선시대 콜레라가 퍼졌을 때, 어느 정도의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나요?

1817년 인도에서 시작된 콜레라는 전세계로 뻗어나가 조선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던데요. 당시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의 피해를 봤고, 어떻게 더이상 퍼지지 않게 치료할 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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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콜레러 발병시 치료받지 않으면 시망률 50~60%이고

    음식을 끓여서 먹어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한번에 수만명씩 목숨을 앗아 가기도 했으며 그당시 콜레라에 대한 민간요법으로 고양이를 키우기도 했습니다.

    콜레라 치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쥐에 붙은 악귀가 콜레라를 일으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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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콜레라가 한반도에 1821년 퍼지기 시작한 이후로 약 2만 2천여명이 콜레라로 인해 사망한것으로 추정되어집니다.

    기존 조선에서 사용하던 한의학이 콜레라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자

    약초를 통하거나 무속에 기대는 등 각종 치료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병에 걸린사람들을 격리하기 시작하였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 전염을 막을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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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장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21년(순조 21) 8월 4일, 한양에서 "구토하고 설사하는 병의 증상으로 인해 평양성 안에서만 사망한 이가 하루 사이에 삼백 명"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조선 정부는 이 병이 무엇인지 조사하기 시작했고, 8월 13일 평안감사 김이교의 보고를 통해 7월 말일부터 평양부의 성 안팎에 괴질이 유행하기 시작해서 사망자가 열흘 사이에 1천 명이 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김이교의 보고를 받은 다음 날 정부는 콜레라가 황해도 지역에서도 유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같은 달 17일, 서장관 홍언보는 산해관 이남의 해안 주변에 괴질이 유행해서 죽은 사람이 많다는 보고를 했는데, 이를 통해 조선에서는 이 병이 중국을 거쳐 평안도 지역으로 유입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김이교의 보고 이후 열흘 뒤에 콜레라는 화성을 비롯한 경기도 일대로 확산되었고, 다시 열흘 뒤에 충청도 산골까지 번졌다. 그리고 경상도와 전라도로 곧바로 확산되었다. 1822년 이 병은 다시 유행해서 제주도까지 퍼지는데, 이때 유행은 전년도에 감염된 보균자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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