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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말똥구리
땅속의 말똥구리23.11.08

커피의 우리나라 도입은 언제부터였을까요?

우리나라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차는 아무래도 커피일건데요. 이런 커피는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을까요? 어떤계기였는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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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1.09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한민국에 커피가 전래된 시기가 언제인지 궁금하군요.

    대한민국에 커피가 전래된 때는 19세기 말이라고 합니다.

    조선이 개화기에 이르면서, 서양인을 통해서 커피가 퍼지기 시작했는데 특히, 대한제국의 황제인 고종은 대표적인 커피 애호가였다고 합니다.

    일제 시대에도 커피는 매우 비싼 기호품이었으며 당시 커피 한 잔은 10~15전이었는데, 조선인 남자 노동자의 일당이 대개 60~80전이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세기 말 무역이나 선교 등 여러 목적으로 방문한 서양인들을 통해 커피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커피를 가리켜 양탕국, 가배차, 가비차 라 불리기도 했으며 1884년 1월 미국인 퍼시벌 로웰이 한강변 창랑정에서 조선에서는 최신 문물이 였던 커피를 식후에 마셨다고 회고록으로 적은 것이 대한민국 커피와 관련한 가장 오래된 기록입니다.


  •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커피의 유입은 조선의 천주교 전파와 함께 되었는데, 즉 1860년대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천주교 박해가 심했던 조선 순조 대에 프랑스 신부들은 커피를 마실 여유가 없었지만 한국 천주교 전래의 상대적 안정기라고 할 수 있는 철종 대에 프랑스 선교사들은 평소 몸에 배었던 프랑스식 식생활을 향유하려고 노력했다. 이때 자국에서 대중화되었던 커피를 마시면서 향수를 달랠 수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 선교사들의 커피 사랑은 그들이 본국과 소통한 서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의 리부아(N. F. Libois) 신부에게 보낸 1860년 3월 6일자 서한에서 베르뇌(Siméon-François Berneux) 신부는 이듬해 조선으로 들어올 선교사 편에 커피 40 리브르(livre) 등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베르뇌가 파리 신학교 장상(長上)인 루세이(Rouseille)에게 보낸 1861년 9월 7일 자 서한에도 커피 등이 반입되었음이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1863년 11월 24일 베르뇌는 리부아에게 보낸 서한에서 커피 50 catis(paquet)가 또 요청되었다. 이어 1865년 12월 4일 리부아에게 편지를 보내 설탕, 커피 각 100 리브르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만약 커피가 원활히 전달되지 않았으면 이렇게 지속적으로 요청했을 가능성이 없었을 것이다.


    한편 개항 이후 1880년대 중반부터는 조선의 일부 상류층들을 중심으로 커피 음용 문화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이 간행한 1886년 저서에 따르면 1883년 보빙사를 안내하는 임무를 맡았던 로웰은 그해 12월 노고를 치하하는 조선 왕실의 초청을 받아 겨울 동안 조선에 머물렀다. 로웰은 1884년 1월의 추운 어느 날 경기도 관찰사(김홍집으로 추정)의 초대를 받아 한강 변 별장으로 유람을 갔는데 꽁꽁 얼어붙은 겨울 한강의 정취를 즐기던 중 “우리는 ‘잠자는 물결’이라는 누대 위로 올라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었던 ‘석식 후 커피’를 마셨다”라고 기록했다. 고종(高宗) 황제도 이 무렵에 커피를 접했다가 1896년 아관파천 이후 본격적으로 음용하여 커피 마니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