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는 왜 삼국시대에 나라에 포함되지 못했나요?
고조선이 멸망후 한민족은 고구려 백제 신라 이외의 각종 소국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중에서 영토를 꽤 넓힌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정도가 있는데, 우리가 삼국시대를 칭할때는 가야가 빠져 있씁니다. 왜 가야를 빠고 말하나요?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가야(伽倻)는 한반도 남동쪽 해안과 인근 섬에 위치한 고대 국가로, 삼국시대에 발해와 신라, 고구려와 경쟁하며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가야는 삼국 중에서 유일하게 중국의 칭화권(征華權)을 받지 않았습니다.
칭화권은 중국이 다른 나라에 대해 자신의 황제를 대신하여 왕을 선출하는 권한을 가지는 것으로, 칭화국(征華國)은 이에 대한 부과세를 내야 했습니다. 발해와 신라는 중국의 칭화국이 되어 왕위승계나 왕의 즉위식에 중국 황제의 인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야는 자주적인 왕위승계와 통치체제를 유지하며 중국에 대해 자주적인 외교를 펼쳤습니다.
또한 가야는 삼국 중에서 가장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여, 발해나 신라와는 차별화된 문화와 언어,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가야는 삼국 중에서도 독자적인 존재로 인식되어 왔으며, 삼국시대 종교와 문화에 대한 연구에서도 가야가 갖고 있던 고유한 문화와 사상이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야는 삼국시대에 발해라는 나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당시 발해는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 위치한 지역에 있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가야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습니다.
그러나 발해(가야)는 삼국 중 하나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지만, 발해(가야)는 고구려나 백제처럼 강력한 국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됩니다. 또한, 당시 발해(가야)는 중국과 교류를 적극적으로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삼국 중 하나로 인정받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발해(가야)는 삼국 중 하나로 인정되지 못했으나, 독자적인 문화와 역사를 가진 나라로서 발전하였습니다. 이후 발해(가야)는 백제와 통합되어 신라라는 나라가 성립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