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헌에서 모계의 성을 사용한 기록이 있다면 언제 그랬나요?
아주 오랜 시대에는 우리나라에 모계중심사회의 시대가 있었고 모계의 성을 따라 가보를 이어나가는 전통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역사 문헌에서 모계의 성을 사용한 기록이 있다면 언제 그랬나요?
고대 한반도의 사회 구조는 고조선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 모계 중심사회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사회 구조는 고조선의 부족 연맹 체제, 삼국시대의 연맹 국가 체제, 그리고 중앙 집권 국가 체제로 변화했습니다. 이런 변화 과정에서 부족의 중심이었던 여성이 사회, 경제, 종교 등의 중심에서 점차 밀려나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신라의 왕권 공고화 과정과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신라의 근래왕(근본왕)이 웅녀와 결혼하여 난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사례, 진덕왕의 시조인 김유신이 그의 모친인 삼촌부인의 성을 계승한 것 등은 모계 중심 사회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 이렇게 신라 초기에는 왕의 아들이 아닌 왕의 외조카가 왕위를 계승하는 모계 중심의 상속 제도가 존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6세기 이후에 들어서면서, 신라는 성계 중심의 사회로 변화하면서 국가 구조도 중앙집권적인 특성을 갖게 되었고, 이런 변화 과정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점차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신라사회는 여성 중심의 사회에서 남성 중심의 사회로 변화했고, 성(姓)도 아버지 쪽을 따르는 성계 중심의 사회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주로 고조선과 삼한 기간의 유물과 기록들을 통한 추론에 불과하며, 명확하게 이 기간이 모계 중심사회였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구체적인 기록이나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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