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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조선사편수회는 어떤 일을 했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3·1 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조선반도사’ 편찬이라는 기존의 방침을 바꾸어 『조선사』 편수를 기획했다. 이를 위해 1922년 조선사편찬위원회를 설치했으며, 1925년 6월에는 위원회를 조선사편수회로 재편하였다. 1938년에 『조선사』(35권)를 완간하였으며, 수집한 사료들을 선별하여 『조선사료총간』과 『조선사료집진』 등의 사료집을 편찬했다. 1944년에는 『근대조선사연구』와 『조선통치사논고』를 간행하였다. 조선사편수회는 학자들의 개인 연구를 관 주도의 연구로 재편하면서 ‘조선사’를 통치기구가 독점하는 데 큰 역할을 수행했다. 1946년 5월 31일에 공식 해산되었다. 조선사편수회의 소장 자료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전신인 국사관(國史館)이 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출처: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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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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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용복은 어떤 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안용복(安龍福)은 숙종 대 사람으로 현재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좌천동에 거주하였다. 신분은 사노비였으며, 주인은 서울에 거주하였다. 당시 좌천동에는 초량 왜관으로 이주하기 전의 왜관인 두모포 왜관이 있었다. 이러한 주거 환경 덕분에 안용복은 일찍이 일본어를 습득할 수 있었다. 그는 동래부에 설치된 경상 좌수영의 수군 병졸로서 전선의 노를 젓는 병졸이었으며, 어업을 생업으로 하였다. 안용복은 1693년과 1696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으로 가서 울릉도 및 독도의 조선 영유권을 주장한 인물로서 조선 후기 『성호사설(星湖僿說)』의 기록을 통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출처:부산역사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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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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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국가에서 술탄의이란 말의 뜻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슬람 세계에서 정치 지도자를 뜻하는 명칭의 하나. 아랍어로 '힘'을 의미하는 '슐타나(ܫܘܠܛܢܐ)'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1] 국내에서의 번역명은 번역가에 따라 다르며, 일반적으로는 무난하게 술탄으로 번역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왕이나 황제[2]로 번역하기도 한다.본래는 종교적 최고 권위자인 칼리파가 세속의 군주에게 하사하던 칭호이다. 의미는 아랍어로 '통치자', '권위'. 당연히 본래 의미는 추상 명사로서 사람에게 붙이는 것은 아니었다.이슬람 세계의 독립적인 군주에게 칼리파가 수여하는 칭호를 뜻하는 최초의 기록은 아바스 왕조의 제25대 칼리파였던 알카디르가 가즈니 제국의 아미르였던 마흐무드에게 수여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이후 셀주크 제국의 투그룰이 가즈니 제국을 격파하고 두 번째로 술탄을 자칭했다.-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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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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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책은 왕실을 중심으로 한 국가의 기본예식이 되어왔으며, 고대 중국에서부터 황실이나 제후와 관련된 행사의 기본이 되는 의식절차이다.편찬 배경은 조선조에 들어와 유교의식이 주류를 이루어 처음에 정도전(鄭道傳)이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제정했으나, 부족한 점이 많아 새로운 예제(禮制)의 제정이 절실히 요청되었던 것이다.편찬 경위는 강희맹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오례의서(五禮儀序)에 의하면 “『두씨통전』과 중국의 여러 예제와 우리 나라 전래의 속례(俗禮)를 가감하여 정리한 것이다.-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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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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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무굴 제국이 몽골이라는 뜻이라고 하던데 맞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힌두 교의 고장인 인도에 이슬람화된 투르크 족이 대거 침입하여, 11세기부터 16세기에 이르는 수백년 동안 여러 이슬람 왕조를 세웠다. 그러나, 16세기에 이르러 아프가니스탄에 왕국을 건설하였던 바베르가 인도의 쇠약을 틈타 뉴우델리를 정복하고 새 제국을 세웠다(1526). 바베르는 티무르의 후손이므로, 칭기즈칸의 후손이기도 하다. 그가 제국의 이름을 무굴이라고 칭한 것도 몽고라는 말에서 연유하는 것이다.-출처: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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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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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장성은 진짜로 천리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천리장성은 고려 초부터 북방 국경 지대에 축성된 여러 성들을 연결시킨 형태의 장성이다. 장성은 서쪽의 압록강 하구와 함경남도 동해안의 도련포(都連浦)를 동서로 연결하는 형태로 축조되었으며, 기록상 총 길이는 1000여 리(약 400km)에 달한다.-출처: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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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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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지배자 칭호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왕'은 중국식 호칭이에요. 신라는 '왕'이란 호칭을 사용하기 전에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어요.제1대 박혁서게는 '거서간'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밝은 태양'이라는 뜻이에요. 제2대 남해는'차차웅'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이는 '무당'을 뜻하는 말이에요. 이것으로 왕이 제사장의 역활까지 맡아 했는데, 신라 초기의 사회가 제정일치(종교와 정치 권력이 분리되지 않고 한 사람에게 집중된 정치체제) 사회였음을 알 수 있어요. 제3대 유리부터 제 16대 흘해까지의 호칭은 '이사금'이었어요. 이사금은 '나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데, 나이 많은 사람은 이가 많다는 데서 나온 말이랍니다. 남해차차웅의 아들 유리와 사위인 탈해가 서로 왕위를 양보하다가 떡을 깨물어서 잇자국이 많이 난 유리가 먼저 왕이 되었다고 해요. 흘해이사금까지는 박,석, 김씨가 번갈아 가면서 왕위에 올랐어요.제17대 내물부터는 왕호를 '최고위 우두머리' 또는 '높은 마루에 앉아 있는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진 '마립간'으로 고치고, 김씨에 의해 왕위가 세습되었으며,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했어요. 또한 눌지마립간 때는 왕위의 '부자 상속제'를 마련했지요. '왕'이라는 호칭은 503년, 제 23대 지증와 4년부터 사용했답니다.-출처:yes24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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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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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에 불교를 수용한 왕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백제의 경우는 384년(침류왕 1)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되었다. 이때 동진에서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陁)가 왔고, 왕은 그를 맞이하여 궁에 들이고 예를 갖추어 경배하였다. 이듬해 2월에는 한산(漢山)에 사찰이 세워지고 9월에는 열 명의 승려가 배출되었다.-출처: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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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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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의 성격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 당시부터 우리나라에 대해 적극적으로 차관공여(借款供與)를 제기하여 두 차례에 걸쳐 각 30만 원과 3백만 원의 차관을 성립시켰다. 이러한 일본의 차관 공세는 1904년 제1차 한일협약 이후 더욱 노골화되었다.이때 일본이 우리나라에 차관 공세를 펴는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한국의 재정을 일본 재정에 완전히 예속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차관으로 식민지 건설을 위한 정지 작업(整地作業)을 하자는 것이었다.-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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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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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더볼트작전이 무슨 작전이었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선더볼트 작전(영어: Operation Thunderbolt)은 1951년 중국 인민지원군 및 조선 인민군의 대공세에 맞서 울프하운드 작전 이후 매슈 리지웨이 장군이 실행한 유엔군의 반격 작전이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이 전투를 한강 남안방어전(중국어: 漢江南岸防禦戰)이라고 부른다.리지웨이는 이러한 경험을 살려 중국군에게 뼈아픈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19] 또한 월턴 워커가 의정부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사망한 후 뒤를 이은 리지웨이는 한국에 주둔한 미군 장교들과 제2차 세계 대전 때부터 친했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 마찰을 빚지는 않았다.[20] 이러한 리지웨이의 배경을 바탕으로 한 유엔군의 과감한 진격과 화해전술은 유엔군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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