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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물학과 고고학의 근본적 차이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연구 대상이 다르죠 고고학이 다루는 것은 유적과 유물이고, 고생물학은 화석이니까요.고고학은 인류 역사를 다루는, 인류학이나 역사학 계열이고고생물학은 인류 시대 이전의 생물들을 연구하는 생물학의 일종이죠. 화석의 특성상지질학으로 분류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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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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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해가바뀌는걸 알았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때도 달력은 있었습니다하루가 지나는거는 그냥 해지는거 보면 되고1년이 지나는거는 그냥 계절 바뀌는거 보면 되니까그정도는 달력없어도 알 수 있었어요.다만 그냥 어렴풋하게 "한바퀴 돌았다" 가 아니라 정확한 숫자로 계산하려면역법이라는, 날짜계산하는 규칙을 누가 만들어야 하는데 신라시대 문무왕 시절에 중국에서 역법을 수입했단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때부터 달력이 있었단 거구요그런데 이게 중국 기준이라 한국에서 쓰면 오차가 생겨서여러번 개정을 시도하다가 세종대왕님이 칠정산 이란 역법서를 만들어서한국 고유 역법이 생겼습니다.한국에서 음력/양력을 같이 쓰는게 바로광복 직후에는전통 달력인 음력이랑 서양수입품인 양력을 섞어 썼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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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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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조로아스터교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북유럽에서 토르 보는 시각이나한국에서 단군 보는 시선이랑 같습니다그냥 옛날에 있었던 종교겸 신화로 봐요조로아스터교를 일부 극단적 민족주의자나 사이비가 이용하려고 했다던데한국도 환단고기같은 사이비 잡서를 믿는 사람이 있으니 그거랑 비슷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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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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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돌 방식의 주거형태가 동아시아에서만 나타나는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온돌 비슷한 거는 전세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로마의 하이포코스트가 대표적이고, 러시아 페치카나 북유럽 카헬오펜 등이 있죠\알레스카에서도 온돌로 추정되는 유적이 발굴 되기도 했습니다.그러니까 온돌을 다른나라가 안쓰는 이유 보다는 한국에서만 대유행한 이유를 말하는게 더 쉬울겁니다.한국은 기후적으로 최고기온과 최저기온이 50도 이상 차이나는 극단적인 환경이며특히 겨울에는 바람이 엄청 심하게 불고 습도또한 계절마다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즉, 여름에는 습기를 빼기 위해서 환기가 잘 되야 하는데겨울에는 난방을 해야하니 공기가열식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습니다또한 대부분 목조건물을 세우거나 어딘가에 나무가 들어가는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한국은, 특히 하층민들은 황토를 구워서 지은 흙집이 대부분 이었죠그래서 벽난로 처럼 "불있는 구역"을 따로 만들 필요 없이그냥 바닥 전체를 달구면 벽까지 온기가 퍼지는 온돌이 유행할 수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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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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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대 선조들 중 가장 문장이 으뜸인 분은 누군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문장만 따지면 무조건 한석봉입니다글을 진짜 넘사벽으로 잘쓴 나머지현대 한자 폰트 자체가 전부 한석봉 글씨체 기준으로 만들어 져서비슷한걸 너무 자주 본 현대인들은 거꾸로 위대함을 알기 힘들 정도라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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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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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과 회고록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자서전은 자기 인생 전체를 요약해서 쓰는 개인적인 기록이고회고록은 특정시기나 특별한 사건을 기준으로 쓰는 것 입니다물론 인생전체를 다루면서 특정시기를 강조할 수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둘다에 해당되는 책도 많은 편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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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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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폭동에서 흑인들은 왜 코리안 타운을 공격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경찰들이 일부로 유도한거란 설이 있습니다.백인경찰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니 당연히 백인 부터 철저하게 보호했으며화난 흑인들도 저건 어떻게 못하겠다 라고 판단해서 보호가 약한곳 아무곳이나 공격했고특히 흑인거주지 근처인데 백인도 아니라 보호를 못받은 코리아타운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거다라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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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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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이 잉카제국을 쳐들어갔을 때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선, 스페인 군은 딱잘라서 200명이 아니라 200"여"명 이었습니다.가혹한 항해과정에서 사람이 죽어서 200명 이하 였다는 의견도 있지만기록된게 200명 이라면 원래 기록이 안되는 하인,노예들을 포함하면 더 많았을 거란 의견도 있습니다.그리고 후발대도 계속 도착했기 때문에 잉카 멸망때는 200명 이상인게 확실 했구요또한 당시 아메리카 대륙 사람들 대부분은 총은 커녕 화약도 몰랐습니다.즉,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총은 그냥 강한 무기가 아니라천둥번개를 자기 손으로 불러일으키는 신적인 초월병기였습니다.총알 하나로는 딱 한명만 죽일 수 있지만, 총소리만으로도 몇백명을 항복시킬수 있는 거죠그렇게 총소리 한번 경험하기만 하면 상대가 총비슷한거만 들고 있어도 공포스러웠을 거구요거기에 당시 잉카제국은 남아메리카 기준으로도 잔인한 편이라서 지방세력의 불만이 가득했고심지어 내전이 끝난 직후라 나라가 엄청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소수정예세력이 난리치기 딱 좋았습니다.심지어 유럽에서 사람말고 각종 질병들도 건너왔는데 이걸 치료할 수단이 전무하니이길만 해서 이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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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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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성골과 진골은 어떻게 다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단 세습이 되는건 확실한데어떻게 왕족을 성골과 진골로 나누는지는 기록이 남은게 없어서 알 수 없습니다다만 순수혈통을 유지하기 힘든건 어느 동물이나 다 마찬가지 이기 때문에성골이 박혁거세의 직계 후손이라면진덕여왕을 마지막으로 성골이 사라지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있어서아마 박혁거세 직계후손(또는 그렇게 자칭하는 가문)이 성골아니었을까하는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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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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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는 왜 성골이 아닌건지 이유가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김춘추 부모는 둘다 진골입니다.진골도 왕족이에요신라시대때의 기록은 남은게 거의 없어서 성/진을 나누는 정확한 기준을 알기 힘들지만삼국사기에 진덕여왕이 마지막 성골이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성골은 왕족중에서도 특수한 혈통만 되었고, 이 특수 혈통끼리 결혼해야 자식도 성골인데진덕여왕때 남자 성골이 전멸해서(아마 혼혈이 너무 되었던 거겠죠) 후대부터는 진골이 왕이되는 상황이었다고추측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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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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