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이라는 말의 진정한 유래를 알고 싶어요.
양반의 유래는 문반과 무반이 맞습니다. 고려시대부터 국왕 조회시 문관과 무관 양쪽, 즉 동서로 나뉘어 서던 자리를 일컬으면서 양반이라는 명칭이 일반하되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문무 고위 관료만이 아니라 양반의 가족, 혈족 전체로 확대하여 부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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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나라의 한신이 만약 괴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한신의 고사성어 '토사구팽'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는 유방을 도와 초한전에서 승리하고 한제국을 세우는데 일등공신입니다. 하지만 유방의 황제권 강화를 위한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괴철은 유방이 제나라를 정벌하자 한신에게 '제나라 왕으로 봉하고 독립세력화'를 제안했으나 이를 거절했습니다. 만약 괴철의 제안을 수용했다면 제나라를 기반으로 항우, 유방 양대 세력이 가교 역할을 하고, 항우와 유방과 더불어 천하가 3분할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한신은 중재로서 유방으로부터 토사구팽도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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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어떤 경로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나요?
우리나라가 과거 베트남 전쟁에 파병한 것은 1965년부터 1974년까지입니다. 베트남 전쟁 파병은 1961년 박정희 등이 5.16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뒤 미국으로 부터 인정과 국군의 현대화, 경제 개발 자금 확보를 위해 베트남 파병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미군은 베트남 전쟁 파병의 대가로 1966년 브라운 각서를 체결하여 한국군의 현대화, 경제 개발 차관 제공을 약속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려는 자유 우방에 대한 지원도 배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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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동화 이런거는 작자를 전혀 모르나요
전래동화는 말 그대로 구전으로 전해지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전래동화를 만든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농민,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들려주면서 변형되고 지역별, 시대별로 내용이 상이하게 형성된 것입니다. 또는 19세기 그림 형제처럼 수집하여 정리한 사례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원형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원시, 신화 풍속에서 유래되며, 무속과 농경 문화가 반영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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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해서 알고싶은 정린이 입니다!
정치는 '인간의 정치적 인물이다'라 같이 인간의 생활하는데 매우 중요한 활동입니다. 반드시 국가, 지방 정부 등의 기관을 맡아 운영하는 것만이 아니라 조직 생활을 하다보면 정치는 삶의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일반적으로 좌파라 불리는 진보는 개혁적이고, 평등, 변화를 강조하며, 우파인 보수는 자유 전통을 유지하고 개인의 시장 경제를 우선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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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관직에 관련해서 질문드립니다.
좌수군절도사는 노량해전에서 통제사인 이순신이 좌익 함대장으로 경상좌수사에게 맡겨 좌익 지휘를 맡긴 직책으로 해석됩니다. 본래 정대수는 정 3품의 경상좌수사로 경상도 자돠 수군절도사입니다. 즉 경상좌수사인 정대수가 노량 해전 당시 좌익 함대를 맡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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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왕과 황제를 구분하기 시작한 건 어느시대부터인가요?
중국에서 왕과 황제를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진시황때부터입니다. 춘추전국시대 주나라 천자만 '왕'의 칭호를 쓰다가 제후들도 점차 왕의 칭하게 되었으며 진시황이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삼황오제의 명칭에서 황제라는 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황제 아래에는 아들, 공신들에게 왕, 친왕으로 봉해 분봉하였으며, 한나라 이후 왕조 전부 황제를 독점하고 왕은 황제 혈족으로 격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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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전쟁을 할 때 갑옷을 입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유럽에서 갑옷은 기원전 4세기 겔트족으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영국 고고학박물관에 켈트 무덤 사슬 갑옷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1세기 로마군이 켈트 사슬 갑옷을 채택항 전쟁에 활용하였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노르만족의 침공 전쟁에서 사슬 갑옷인 호버크가 표준화되었으며, 십자군 전쟁 때 일반 병사까지 착용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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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죽은 어떤 이유로 축제 아이템으로 사용댓는지 궁금해여?
폭죽은 본래 중국에서 기원전 2000년경 발명한 것으로 춘절에 대나무 속에 넣어 불태워 '니안' 익령을 쫒았습니다. 13세기 불꽃놀이로 발전하여 인도의 디왈리, 미국의 독립기념일 등 축제에 승리, 번영 기원하는 상징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불꽃축제처럼 화려한 빛과 소리가 행사 흥을 돋는 풍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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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이 오래 살았으면 역사는 바꼈을까요?
문종이 오래 살았다면 분명 조선 초기의 정치적 변화는 있었을 것입니다. 우선 문종은 세종의 장남이며, 적장자입니다. 문종은 대리청정이 풍부하고, 개혁 정치를 주도한 경험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동생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킬 엄두를 내지 못햇을 것입니다. 즉 단종의 보위가 안정화하여 수양대군의 찬탈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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