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조카인 이완은 어떤 인물이었나요?
이완은 이순신 장군의 큰 형님인 이희신의 아들입니다. 14살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숙부 이순신 휘하에 종군했으며, 19세이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전사할 때 함께 했습니다. 당시 이순신의 마지막 유언(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를 지켜 왜군을 격퇴하여 승리를 이끌었습니다.그리고 임진왜란이 끝나고 1599년 무과에 급제한 이후 광해군, 때 평양중군, 충청도 병사를 지냈습니다. 인종 반정 후 이괄의 난 진압에 나서 가선대부에 올랐으며, 1627년 정묘호란 때 후금 군의 침입을 막대 전사하였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2)
응원하기
금성대군이 수양대군으로부터 단종을 지키려했던 것은 어떤 이유인가요?
금성대군이 단종을 지키려는 이유는 성리학적 유교에 입각한 정통성, 명분 때문입니다. 그리고 금성대군은 세종의 여러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일방적인 수양대군과 정치적 대립 구조하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금성대군은 여러 대군들과 함께 단종의 즉위시 단종을 잘 필요하겠다는 약속을 하겠다는 신의를 지키려 한 것입니다. 그리고 수양대군이 김종서, 조카인 단종의 축출, 선양 강요 등 당시 기준으로 본다면 왕위 찬탈을 목격하고, 이는 도리에 벗어난 행위로 여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2)
응원하기
과거 원시인이나 조선시대 사람들도 피부 여드름이 났을까요?
역사적으로 과거 조선 시대 사람들도 여드름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오늘날 보다는 적지만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오늘날 서구화가 덜된 파푸아뉴기니, 파라과이 아체 등 채집, 전통 부족들은 여드럼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의 식단이 가공식품이 아닌 고구마, 뿌리류, 채소 같은 것이기 때문이 기인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완전하게 없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도 피부병, 종기, 습진 등이 있다는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의서에서 어성초 같은 약초가 피부염, 여드름성 병변에 좋다고 언급되고 있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고려시대 기인 제도는 무엇인가요??
고려시대 기인제도는 태조 왕건 때부터 지방 호족을 견제하기 위해 시행한 제도입니다. 태조 왕건이 지방 호족의 지지를 받아 고려를 건국하였지만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호족의 자제를 수도인 송악으로 불러 인질로 삼아 반란을 막고 지방 사정을 고문으로 활용하려 햇던 것입니다.향리의 자제를 기인으로 선발하여 수도에 머물게 하고, 수도에서 숙위(경호)하게 하였습니다. 왕권 안정 이후 노동력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2)
1
마음에 쏙!
5,000
한국사능력검정시험 2등급 이상 준비 어떻게 하나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2급은 심화 과정으로 70 점 이상 맞추면 가능합니다. 기초가 부족해도 2~3개월 꾸준히 집중하면 가능합니다. 하루 2~3시간 꾸준히 공부하세요. 2주까지는 개념 잡는 것에 집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기초가 부족하면 고등학교 한국사1,2 교과서를 탐독하고, 수능 EBS를 통해 개념을 잡는 것도 추천합니다. 최태성의 7일의 기적 등의 개념서를 통해 핵심 내용을 파악하고, 흐름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3~5주차 이후에는 기출 문제를 풀어보세요. 그리고 6~8주는 실전, 암기 강화하고 오답을 반복하여 풀어봅니다.
5.0 (1)
응원하기
고려 광종 때 시행된 과거제도가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것인가요?
고려 태조 왕건은 결혼 정책, 사성 정책 등을 바탕으로 호족 연합으로 왕권을 안정시켰습니다. 하지만 태조의 사후 호족들의 득세로 왕권이 약화되고, 정국이 혼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즉위한 광종은 호족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과거제를 시행했습니다. 즉 유교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여 관료제를 통해 호족을 견제한 것입니다. 비록 몽골 침입, 원 간섭 시기에는 과거제가 약되었지만 고려말 공민왕이 다시 과거제를 강화하여 사대부를 우대했습니다. 조선 건국 이후 과거제도는 그대로 계승되어 고려 관료제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조선 후기에 안동 김씨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선 후기 세도 정치가 나타난 것은 정조 사후 어린 순조의 즉위를 배경으로 합니다. 특히 안동김씨 김조순의 딸은 순조비가 된 것이 계기입니다. 김조순은 겸손한 충성으로 정조의 신임을 받아 자신의 딸을 세자빈으로 간택하게 하였으며, 순조 즉위 이후 외척을 부상하였습니다. 안동김씨는 헌종비, 철종비 등 3대에 걸쳐 왕비를 배출했습니다. 안동 김씨 세도 가문은 비변사와 군영을 장악하고, 매관매직을 통해 경제력을 장악하였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온조가 백제를 건국할 당시 그 땅에는 어떤 민족, 부족이 존재했었나요?
온조는 고구려를 떠나 한강 유역의 위례성에 정착하여 백제를 건국하였습니다. 한강 유역에는 마한 소국들과 한인과 예인 등 토착 부족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고조선의 후예인 '한인', 그리고 부예계 '예인' 그리고 여러 소국이 연합체입니다. 토착인 백제는 마한 54개국 가운데 하나로 한강 하류의 미추홀, 주변 소국을 병합하면서 성장하였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암행어사와 사헌부는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나요?
암행어사는 왕이 비밀리에 임명하는 특명 관리입니다. 종 2품~3품의 고위 관료들을 대상을 선발하며, 지방을 돌며 비밀 감찰 업무를 수행합니다. 사헌부는 3사 가운데 하나로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며, 사간원과 함께 언관으로 활동하는 상성기관입니다. 정 1품 대사헌에서 부터 종 6품 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조직입니다. 성종 때 사헌부 분대어사가 암행어사로 발전하여 중종 이후 왕 직속으로 운영된 것이 암행어사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역사 기록의 객관성에 대한 철학적 논쟁은?
역사의 객관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는 '역사는 있던 그 자체"라고 하여 객관성을 강조했습니다. 즉 사실을 기반으로 한 역사를 중시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며, 기록 자체가 작성자의 시대·문화·이데올로기 관점에 물들어 있다고 비판합니다. 결론적으로 역사는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역사가의 주관적 해석이 필요합니다. 즉 비교적 개관적 서술을 지향합니다.
4.0 (1)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