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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나 차례지낼때 술잔을 향불위에서 두번돌려서 올리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원래 초에 불을 붙이고, 향을 피우는 이유는 조상의 영혼을 불러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를 올릴 때 술잔을 두 손으로 받쳐 올려 상에 올리는 행위가 제단 앞에 있는 향 위를 지나다 보니 그것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의 행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집에서는 오른쪽으로 몇 번 왼쪽으로 몇 번 돌리는 집도 있고, 향 연기에 한번 그을리는 정도로 하고 술잔을 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확한 설이 없으니 음향오행에 의해 제사상 기준으로 시계 방향으로 6시-9시-12시-3시 또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는 집안도 있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야 하다는 집안도 있고, 잔을 돌리지 않고 그냥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린다는 집안도 있고 아주 다양합니다. 어떤 이유로 다르게 이어져 왔는지는 모르나 그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냥 각 집안에서 내려오는 전통적인 방식에 대해 존중하고 서로 간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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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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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공신으로 인정되면 특혜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국시대에도 녹공을 내렸다는 기록은 있으나 공신책봉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는 듯 합니다. 고려 때는 공신의 경우 토지와 노비를 내리고, 무신정권 이후에는 그 자손에게도 특혜를 대물림하게 확대되었습니다. 조선에도 그대로 이어져 그 명칭만 달리하였다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공신의 정도를 더욱 세분화하여 1~4등 공신 등 등급을 나누어 그에 따른 특혜의 정도도 달리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공신호는 개국공신부터 시작하여 총 28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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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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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관련서적보다가 조세형이란인물이 있던데 왜 대도라고 부르는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과거 조세형이라는 사람은 1970~80년대 전과 17범으로 유명한 절도범이었습니다. 그가 유명인사의 집도 많이 털었기 때문에 별명이 대도 조세형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전직 국회의원, 현직 부총리, 유명기업 사장, 국내 재벌가 딸의 집 등에서 엄청난 명품들을 훔쳤기에 그랬습니다. 조세형은 밤에는 도둑질을 하지 않고, 낮에 부자집만을 골라 절도행각을 벌였습니다. 부자들이 뒤가 구려서 잘 신고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절대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훔칠 것이 많아도 딱 20분만에 작업을 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외국인의 집은 나라망신이라 털지 않고, 판검사의 집도 털지 않았다고 합니다. 판검사의 집은 자신은 잡히지 않겠지만, 다른 절도범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그랬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훔친 돈 및 재물의 30%를 가난한 사람을 위해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도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당시 정치인, 부자들에 대한 반감이 심했으니까요. 하지만 조세형은 그냥 절도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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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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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는 어떤 욕구가 인간을 지배하게 될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문명이 고도화됨에 따라서 더 많은 분야에서 디지털화가 이루어질 것이고, 최근 대두되어 발전하고 있는 AI 기술에 의해 지금보다 더 많은 정보가 넘쳐날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현재의 AI 기술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의 경우 그 독점을 특정 포털들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이로 인해 미래는 이러한 데이터 전쟁이 될 것이고, 그것이 현재 SNS 등의 발달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고, 일부 돈을 주어서라도 개인정보 확보에 구글, 네이버 등등의 회사들이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입니다. 지금의 분위기대로 흘러가면, 데이터는 상위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을 이용한 대중들의 취향을 분석하고 제시하여 일반 대중들은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욕망대로 선택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없게 하고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것에 심리적으로 협소한 선택을 하게 될 우려도 있습니다. 미래에 어떤 욕구가 인간을 지배할 것인가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본적인 식욕, 성욕, 수면욕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유지되겠지만 그 유지의 형태가 영화에서처럼 기계적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어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최근 아날로그를 선호합니다. 일부러라도 몇 가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디지털에 의지하지 않고, 아날로그화 하여 그 감성을 직접 느끼는 것이 좋습니다. 디지털이 너무나도 세상을 편하게 하고 발전시켜왔지만, 인간의 가치까지 디지털화되는 것은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라 그다지 좋지는 않네요. 그래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그냥 지금처럼 그대로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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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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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를 언제부터 트롯트라고 불렀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칭이 여러가지로 불리다 보니 혼동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가요는 '민요, 동요, 유행가 등 노래를 통틀어서 일컫는 말'입니다. 그 중 대중가요라고 명명한 것은 그러한 노래들 중 '널리 대중이 즐겨부르는 노래'라고 하여 가요에 대중이라고 일반화하여 명명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대중가요 의 한 장르로 트로트가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장르로는 발라드, 락, 힙합 등 그 분위기와 형태에 따라 구분하고 있고 그 각 장르 내에서도 더욱 세분화하고 있습니다. 1880년대 일본의 엔카가 메이지유신 연설을 위한 곡으로 초기에 만들어졌다가 1914년 4/4박자의 폭스 트로트라는 장르가 들어와 결합되면서 지금의 엔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일제 식민 치하에 우리 나라에도 전해져 변형되어 2/4박자 즉 '뽕짝'이라는 트로트가 시작되어 지금에까지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45년 해방 전까지는 일본식의 엔카와 우리나라의 트로트 장르가 혼재되어 비슷하게 발전하다가, 이후 우리나라의 트로트는 엔카와는 다르게 발전하였고, 1960년대~197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장르의 대중가요인 서양의 팝음악, 발라드, 락, 댄스가요 등이 1980년대부터 발전하여 트로트가 잠시 주춤하다가 최근에 들어와서 여러 케이블 방송에서 트로트가 이슈화되면서 다시금 인기가 살아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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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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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서당은 지금으로치면 학교인가여?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옛날 서당은 조선시대 국민교육의 기능으로 신분의 제약 없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사립 초등교육기관입니다. 교육목적은 유교의 기초, 4학, 향교에의 입학준비, 유교적 예절 습득, 향풍 순화교육이었습니다. 교육내용은 강독, 제술, 습자로 진행되었고, 계절에 따라 교과내용을 달리하였으며, 주로 주입식과 암기 위주였고, 능력에 따라 그 수준을 달리 하였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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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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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묘역의 비석에 애국지사 또는 순국선열이라 쓰여 있는데 다른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독립유공자 중 애국지사와 순국선열은 죽음의 인과 관계에 있어서 그 명명의 차이를 보입니다. 먼저 애국지사는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에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 그 공로로 건국훈장, 건국포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순국선열은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에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가 순국한 자 그 공로로 건국훈장, 건국포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입니다. 차이를 보시면,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 vs 일제에 항거하다가 순국한 자'의 차이로 항거 행위가 사망에까지 이르렀다면, 순국선열인 것이고, 독립운동은 하였으나 그 이유로 사망하지 않고 이후에 사망한 경우에는 사망 후 애국지사라 명명합니다. 두 경우 모두 대한민국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신 소중하고 감사한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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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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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드라마보면 사약먹고 많이들돌아가시던데 사약은 무엇으로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사용했던 사약의 재료는 천남성, 부자, 박새, 이부자, 초오, 자리공 등이 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다 독성이 강한 식물의 열매, 뿌리, 또는 잎이지만, 사실 드라마처럼 사약을 마시고 그자리에서 바로 죽지는 않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기록에는 사약을 마셔도 죽지 않아 16잔까지 마시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더 독성이 강한 것으로는 비상을 사용했는데 이는 삼산화비소라고도 합니다. 아르세노라이트라는 광물을 가열시켜 나온 결정체로 고온에서 건조하면 냄새 없는 백색가루 형태가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독성이 강해 치사량을 복용 시 급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약은 일반 죄인에게 내리는 사형이 아니라 사대부 이상의 지체 높은 이의 경우 유교사상에 입각하여 신체를 훼손하지 않고 죽게 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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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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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는 유교문화이고49제는 불교문화라는데 맞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원래의 제사 문화는 원시·고대인들이 자연 그 자체를 대상으로 외경심, 신비감의 근원인 신, 하늘, 땅 등에 대해 삶의 안식과 안락을 기원하거나 감사의 표현으로 제사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인간의 사후 영혼에 대한 신앙도 생겨나게 되어 조상신에 대해서도 숭배와 복을 비는 제사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화가 발달하면서 제의는 일정한 격식을 갖추어 제도로 정착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의 경우도 단군 이전부터 하늘의 자손으로서 제천의식을 하였고, 나아가서는 단군을 섬기는 제사나 자연의 일부(토템-산, 바다, 나무 등)를 섬기는 제사를 지내곤 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지내고 있는 조상 제사의 형태는 조선 시대에 들어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제도화가 크게 진전되었고, 국가, 왕가, 일반사가의 모두 주희의 『가례』를 기본으로 삼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유교의 제사는 효의 한 방법으로서 조상의 추모와 복을 바라는 것이 섞여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하는 재는 유교의 제사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자 표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거부터 신께 올리는 것이나 유교적 전통 방식으로 조상에게 올리는 것은 제(祭)라고 하고, 불교에서 하는 것은 재(齋)라고 합니다. 원래 재는 부처가 하루 한번 하는 사시공양을 가리키던 말로 이후에 법문을 설법하였기에 법회로 발전하였고, 이후 불교 의식인 재로 불리었습니다 불교의 재는 조상신을 기리는 제사가 아니라 그 영혼이 이승의 연을 뒤로 하고 사후 세계로 돌아가 다시금 윤회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의식을 치르는 것입니다. <지장경>에는 귀신에게 제사 지내지 말라는 부처의 말씀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어서 새로운 세계에 바로 태어나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것을 '중유'라 하며 사람이 죽으면 7일 단위로 머무르고 7일 한도로 인연을 못 얻으면 죽었다가 다시 나서 7일을 머문다고 합니다. 이로써 총 49일을 머무르는 것을 중유라고 합니다. 이 기간에 인연을 받아야 중유 종자가 바뀌어서 소속되어 있는 원래의 곳에 다시 태어나거나 또 다른 종류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이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망자는 필히 윤회를 하는데 현생에서 업보에 따라 지옥세계, 아귀세계, 축생세계, 아수라세계, 인간세계, 하늘세계로 가게 된다고 합니다. 망자는 현생에서 행한 행위에 대해 7명의 재판관에게 재판을 받고, 그 결과에 따라 어느 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이른바 삼악도(三惡道; 지옥도·아귀도·축생도)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재판관들에게 드리는 기도행위가 바로 49재입니다.저승의 각 재판관들은 진광대왕, 초강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태성대왕의 순서로 7일씩 망자를 재판합니다. 유가족들은 이러한 49일 동안 7번의 제사를 지냅니다. 보통 7일 마다 올리는 재는 간소하게 하고 마지막 49일이 되는 일곱 번째 재는 정성이 가득 담긴 재물을 드립니다. 49재순서는 1.시련(侍輦:영가를 초청해 영단에 모심) 2.대령(對靈:영가에게 진행할 일을 부처님의 법으로 한다는 것을 설명함) 3.관욕(觀浴:업장소멸과 부처님의 정법이 무엇인지설명하는 일종의 영가 목욕시키는 것) 4.헌공(獻供:부처님게 공양을 드리는 의식) 5.신중헌공(神衆獻供:천지신명께 공양을 올리는 의식) 6.천도재 (이 천도재를 제사와 유사한 의미로 여기기도 함)7.봉송(奉送:영가를 환송) 8.탈상(脫喪:상주가 평상으로 돌아가는 의식)으로 종료된다고 합니다. 정리해보면 49제라는 말은 없고, 49재라고 합니다. 유교의 제례 문화와 불교의 49재 장례의식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유교의 제례 문화에서는 위패에 지방을 쓰는데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고 부친의 제사를 올릴 때 쓰는데 이때 쓰는 '신위'라는 것은 돌아가신 부친의 영혼을 부르는 말입니다. 따라서 유교의 제사는 조상신을 불러서 하는 것이고, 불교의 재, 즉 49재는 장례의식으로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서 윤회할 수 있도록 하는 기도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요즘 절에서는 불교 신도 중 집에서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않고 절에 위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오랜 유교적 사상으로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효라는 의식이 강하다 보니 불교도인 경우에도 그 날을 기리기 위해 절에 위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조상의 제사를 대신 지내주는 것이 아니라, 조상의 기일에 불교적 재를 올리는 것이라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천주교에서 부모님 기일에 미사를 넣는 것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교의 제사와 불교의 49재는 별개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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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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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의 딸로 태어나면 붙여주는 칭호가 공주 옹주 이렇게있는데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정실부인 즉 중전에게서 낳은 아들은 대군, 딸은 공주라 부르고, 후궁에게서 낳은 아들은 군, 딸은 옹주라고 부릅니다.부름에 있어서 차이는 있었으나, 후계로 낙점된 세자가 아니고서는 대우는 동일하다고 보면 됩니다. 공주와 옹주는 권력 서열과는 상관없고 구분 없이 부마라고 지칭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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