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시대에 전기와 후기에 왕권의 차이에 대해서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진골 귀족들의 왕위 다툼이 그 원인입니다.모두가 왕을 하고 싶어 하고 그러다 보니 반란이 자주 일어나고 왕권은 약해지고 그러다 보니지방에 대한 영향력이 약해지고 지방호족들도 중앙의 말을 잘 안 듣게 되고 결국에는 지방세력가 들에 의해서나라가 사분오열되고 통일신라는 망국의 길로 가게 됩니다.
평가
응원하기
금난전권이라는 말은 무슨의미인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말그대로 난전을 금하는 권리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나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나라에 허가를 받은 사람만이 장사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들은 그렇게 상권을독점하였고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조정에는 막대한 뇌물을 바쳐가며 그들의 권리를 지켰습니다.하지만 조선후기에 오면서 이러한 부분들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점차 벽이 허물어 지게되고정조가 이를 혁파하게 됩니다.
평가
응원하기
통제사라는 관직은 얼마나 높은 자리인가요?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도수군통제사는 지금으로 치면 3성 장군으로 생각하면 됩니다.군단장급 지휘관이지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아우르는 해군제독이었고당시 조선의 전 함대를 움직였다고 보면 됩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시대 내시가 거세를 하게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거세를 한 이유는 궁궐에 있는 궁녀들은 모두 왕의 여자들인데 아무래도 내시가 있다보면 궁녀들을 탐하는 일이 있을 수 있고 그러한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라고 합니다.궁녀만 있으면 궁궐에 힘이 필요로 하는 일들을 할 수 없고 남성을 궁궐에 들이려고 하니 불안한 마음이 있고그래서 고대 중국의 황제 시기 부터 그렇게 하게 되었고 그 부분이 우리나라에도 전파되어 우리도 그러한 문화를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고환과 음경 모두를 물리적으로 제거하여 시술을 받은 절반 정도가 사망했다고 합니다.나중에는 고환만을 명주실로 감아 피가 안 통하게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고환이 떨어져 나가게 만들었다고 합니다.대부분 천민 중에 내시를 지원했다고 하는데 그들은 어차피 굶어 죽을 목숨 궁궐에 들어가면 밥은 먹으니까라는 심정으로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고려시대 삼별초는 어떻게 생겨난건가요?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별초는 무신정권 최충헌, 최우로 이어지는 무신정권의 가별초에서 시작되었고 그들은 고려조정이 원나라에게 항복을 하였지만 끝까지강화도, 제주도 등으로 옮겨가면서 항전을 했습니다. 고려 무신정권의 최후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고 우리민족의 끈질긴 항전의지를 나타냅니다.
평가
응원하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의 자식도 아닌데 어떻게 후계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거의 일본을 통일했지만 통일을 앞두고 혼노지의 변으로 어이없게 사망하게 됩니다. 이제 천하의 주인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도요토미 히데요시, 마에다 토시이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의 세력이 아직 남아 있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발빠르게 움직였고 조정을 빠르게 장악하여 버립니다. 오랜 친구였던 마에다 토시이에는 자신의 편으로 돌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압박했습니다. 물론 그러면서 그의 세력을 빠르게 늘려 갔습니다. 때로는 겁박으로,때로는 회유로서 세력을 넓혀가고 백성들에게도 천민 출신인 쇼군을 강조하며 인심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세력으로 예전 오다 노부나가의 세력을 병합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세력 또한 그 독립성을 어느정도 인정하면서 회유시켰습니다. 자력으로 그자리에 올랐다고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략이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야구에서 디셉션은 뭘 말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디셉션은 투수가 자신이 어떤 공을 던질지 타자가 모르도록 숨기고공의 구질에 변화를 주는 방법입니다. 투수들 중에서 이러한 디셉션을 이용하여 타자를 속이는 투수가 많이 있고 한국의 류현진 선수도 디셉션을 사용하는 선수 중 한명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시대 정묘호란 병자호란에 관해서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묘호란때는 완전히 밀리지는 않았습니다. 일부 전투에서는 조선군이 후금군의 보급로를 끊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의병들이 봉기하여 후금군을 기습했고 당시 후금군도 명나라와의 전쟁으로 조선에서 시간을 낭비할 틈이 없었습니다.이에 형제관계로 대략 마무리하고 후금이 조선조정과 협정을 맺고 돌아간 전쟁입니다. 하지만 병자호란은 틀렸습니다.압도적으로 홍타이지가 직접 끌고 온 군사들로 남한산성의 조선군을 압박했고 완벽한 승리로 조선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항복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정묘호란 때는 패배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굴복은 하지 않았지만 병자호란때는부모의 나라로 섬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군신의 맹약이 성립 된 것이지요. 조선으로서는 치욕의 맹약이었습니다. 여진족은본디 조선을 부모의 나라로 섬기던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에게 이제 상황이 뒤바뀐 것이니까요.
평가
응원하기
조선은 성리학적 질서가 강화된 사회인데, 강화시킬 수 있던 장치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퇴계 이황, 율곡 이이가 조선에 맞는 성리학적 사상을 만들었고성리학적 사고관을 전파하기 위해 성학집요 등 많은 성리학적 서적이 만들어 졌습니다.그것이 조선시대 고을까지 퍼져서 삼감오륜, 삼불거, 칠거지약 등 일반 백성들의 삶을 통제했고 제약했습니다.성리학적 사고관이 향촌까지 퍼져서 작용을 한 것이고 마을에는 향교가 세워지고 마을의 수령이 향교의 지방 선비들의조언을 맏아서 마을을 관리하였습니다. 성리학적 사고관이 조선 전체를 지배한 것입니다. 그 이유로 성리학의 나라 조선이500여년 동안 지탱 할 수 있었고 무너지지 않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시대 포졸은 경찰이였나요? 군인이였나요?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찰의 일을 주로 하였지만 군인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오늘날의 군사경찰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군과 경찰의 신분이 모호했기 때문에 포졸은 오늘날의 의무경찰 정도의신분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조선 주요도시의 치안을 담당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