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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도 미술의 어머니나 아버지라고 불리는사람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미술의 어머니는 들은 적이 없지만 미술의 아버지는 있습니다.현대미술의 아버지를 피카소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피카소의 화풍이 있게 길을 열어 준 세잔이야말로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보는 견해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후기 인생파의 대표 작가인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은 프랑스의 대표적 화가로서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린다고 합니다.세잔은 르네상스 이후 수백 년간 서양미술을 근본이 되어온 원근법과 해부학, 명암법 같은 조형 원리를 따르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그의 미술은 외부 세계를 묘사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림 내부의 조형 세계를 표현하게 됩니다.현대미술의 개념을 만든 폴 세잔의 파격적인 표현인 지적이고 기하학적인 조형 원리에 영향을 받아 입체파의 대표자 파블로 피카소와 야수파의 앙리 마티스가 등장했다고 합니다.피카소는 세잔의 작품에서 평면에 형태를 표현하는 법을 배웠고, 마티스는 세잔에게서 풍부한 색채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폴 고갱, 조르주 브라크, 바실리 칸딘스키, 한스 마이어까지 세잔의 영향을 받았고 모든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들이 그를 아버지로 불렀다고 합니다.
학문 /
미술
22.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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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9대왕 성종에 대한 궁금증
안녕하세요. 다음 왕을 이어받는 아들에게 '종'이 붙는 것이 아닙니다.조선시대 왕이 승하한 다음 그 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호칭을 '묘호'라고 하는데 '종'이나 '조’ 가 붙습니다.‘조’가 붙는 경우는 업적이 지대하게 크거나 옳지못한 정치를 하는 왕을 폐위하여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등의 여러 가지 공적을 남긴 왕에게 붙여지는 묘호라고 합니다.조선시대 27명의 왕 가운데 ‘조’를 붙은 경우는 태조, 세조, 인조, 정조, 영조, 선조, 순조 7명입니다.‘종’은 ‘조’를 붙인 왕 외의 나머지 왕들에게 붙여진 것으로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린 경우에 해당된다고 합니다.광해군과 연산군처러 나라를 위한 업적과 공을 쌓지 못하거나 왕위에서 폐지된 경우 '군'이 붙는다고 하네요제 답변이 질문자님께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학문 /
철학
22.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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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도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나요?
안녕하세요. 서양에서도 숫자 3을 매우 좋아하여 성서나 신화에도 자주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기독교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이슬람교에는 메카와 메디나, 예루살렘의 성스러운 3개 도시가 있다고 보았습니다.북유럽 신화에서는 운명의 천을 짜는 3명의 여신인 우르드, 베르단디, 스쿨드가 등장합니다.이렇듯이 3을 선호한 것으로 보입니다.중국에서 숫자 3은 '살아 있다’와 같은 발음으로 행운의 숫자로 여겨지기도 합니다.제 답변이 질문자님께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학문 /
역사
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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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근교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 가볼만한데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초등 1 남자 아이랑 겨울방학 때 같이 가볼만한 곳으로 부산박물관과 부산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을 추천합니다.부산박물관은 부산의 역사성과 상징성이 있는 박물관으로 부산을 대표하는 박물관이라고 합니다. 제1관 동래관에는 구석기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주로 동래지역에서 발굴 수집한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가 구성되어 있고, 제2관 부산관은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 근현대 자료들로 전시가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부산현대미술관은 부산시가 건립한 공공미술관으로 낙동강 하구 을숙도라는 섬 안에 있습니다. 식물이 뒤덮은 외벽인 ‘수직정원’이 특징으로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는 작품 감상과 독서뿐 아니라, 현대미술과 관련된 여러 교육 프로그램도 참여하실 수 있다고 합니다.부산시립미술관은 시민들에게 문화체험을 제공하고 다양한 미술 작품 수집 및 연구하는 곳입니다. 야외 광장에 별관으로 건립된 이우환 공간은 BTS의 RM이 다녀간 이후 더욱 유명해졌다고 하네요. 어린이미술관이 따로 있다고 하니 꼭 가보시면 좋을 듯합니다.제 답변이 질문자님께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학문 /
미술
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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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국가 대항전에서 어린애들과 함께 입장
안녕하세요. 축구 경기 전에 선수들이 어린이와 손을 잡고 같이 입장하는 것은 꼭 지켜야 하는 축구 규칙은 아니고 하나의 관례인 것 같습니다. 국제 축구 경기를 비롯하여 국내 축구 경기가 있을 때 선수들을 같이 들어오는 어린이들을 ‘플레이어 에스코트’라고 부릅니다.이 어린이들은 선수를 그라운드로 안내하는 역할을 합니다.플레이어 에스코트는 원래 ‘평화와 화합의 전령사’라는 의미를 가집니다.축구 경기를 통해 전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도모하고 축구가 가지는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어린이들을 통하여 부각하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혹자는 잇따른 스캔들로 이미지가 안 좋은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홍보 차원에서 도입한 의전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어째든 어린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입장하는 모습이 선수 혼자 입장하는 것보다 훨씬 보기 좋은 것 같습니다^^제 답변이 질문자님께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학문 /
음악
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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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시대 태조왕건과 궁예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왕건은 궁예 휘하의 장군이 되어 많은 공로를 세웠다고 합니다.특히 가문이 키워온 수군을 이끌고 한강 유역과 지금의 경상남도까지 공략하여 기세를 떨쳤고 이런 왕건의 활약에 힘입어 궁예는 견훤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하지만 본래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했던 궁예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명분을 접고 스스로를 신라 왕실의 후예라 하면서, 자신이야말로 타락한 신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창시할 구세주라고 했다고 합니다.그리고 세력이 커진 호족과 장수들을 반역죄로 처형했는데 왕건도 죽을 뻔했다고 하네요.가까스로 위기는 모면했지만 언제 궁예의 손에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궁예가 독재로 민심을 잃게 되자 왕건는 자신의 세를 규합하여 918년에 궁예를 내쫓고 스스로 고려의 주인이 되었다고 합니다.제 답변이 질문자님께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학문 /
역사
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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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 고려 건국에 대해서 궁금한게 있어요
안녕하세요.우리나라 역사 상 '고려'라는 국호를 사용한 것은 주몽이 세운 '고구려'와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 그리고 왕건이 세운 '고려'입니다.주몽이 세운 고구려의 국호는 초기엔 고구려였다가 장수왕 대부터 '고려'로 사용됐다고 합니다.궁예가 세운 후고구려 역시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당시의 국호는 '고려'였다고 합니다.하지만 본래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했던 궁예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명분을 접고 스스로를 신라 왕실의 후예라 하면서, 독재와 폭정으로 민심을 잃게 되자 왕건는 자신의 세를 규합하여 918년에 궁예를 내쫓고 스스로 고려의 주인이 되었다고 합니다.그런데 현대에 와서 명칭이 바뀐 것은 뒤의 왕건이 세운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그러니 어찌보면 질문자님의 의견처럼 고려의 첫 시작을 궁예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제 답변이 질문자님께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학문 /
역사
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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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도 만화로 볼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벽화는 예술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벽화미술은 공공미술에 속하는 장르로 이는 미술이 개인의 창작물로서 고착되지 않고, 미술관이나 전시장이 아닌 공개된 장소에서 일반 대중들이 즐길 수 있게 설치, 전시된 작품을 말합니다.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조각상이나 설치물을 비롯하여 마을의 벽화, 간판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벽화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 경상남도 통영의 동피랑 마을입니다.‘동피랑’은 ‘동쪽 벼랑’이라는 뜻을 가진 통영의 작은 마을로 이곳에는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곳입니다.오래 되고 낡은 이 마을을 철거하고 동포루를 복원한 공원을 조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2007년 시민단체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마을을 유지하면서 멋진 벽화를 그려 지금의 멋진 벽화마을 동피랑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제 답변이 질문자님께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학문 /
미술
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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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보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안녕하세요. 기원전 6세기 무렵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확고한 세력을 유지한 브라만교에 때문에 번성하지 못했습니다.그 후 300여 년이 지나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 왕이 불교를 지원하여 인도 전역에 널리 퍼질 수 있었으나 아쇼카 왕이 죽자 힌두교에 밀려 다시 쇠퇴하게 됩니다.그로부터 약 300년이 지난 후 한나라 말기에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 됐으며, 다시 500여 년 후 위진남북조 시대에 달마 대사가 동쪽인 중국으로 가게 됩니다.대승 불교라는 이름으로 중국에 들어온 불교는 처음에는 지배층에게만 받아들여졌었는데 달마로부터 전래 된 선종이 대중들에게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중국 문화와 융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달마가 동쪽, 즉 중국으로 간 이유는 더 많은 사람에게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합니다.제 답변이 질문자님께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학문 /
철학
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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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귀에 경읽기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를 대신 할수 있는 속담은 뭘까요?
안녕하세요. ‘소 귀에 경 읽기’란 소의 귀에 대고 경서를 읽는다는 것으로 소의 귀에 아무리 사람이 읽는 책을 백 번 읽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즉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 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일컫는 속담입니다.이 ‘소 귀에 경 읽기’를 사자성어로 우이독경(牛耳讀經)이라고 하는대요. 소 우(牛), 귀 이(耳), 읽을 독(讀), 경서 경(經)을 씁니다.소 귀에 경 읽기와 비슷한 속담은 찾지 못했지만 우이독경과 비슷한 사자성어는 꽤 있습니다.대우탄금(對牛彈琴)은 소를 마주 대하고 거문고를 탄다는 뜻입니다. 역시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깊은 이치를 말해 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므로 아무 소용이 없음을 말합니다.마이동풍(馬耳東風)은 말의 귀에 동풍이라는 뜻으로 동풍은 동쪽에서 부는 봄바람으로 봄바람은 부드러워 말의 귀를 스쳐 가도 아무런 자극을 주지 못한다. 말의 귀에 동풍이 스치듯 남의 말을 귓등으로 흘림을 빗대어 표현하는 말입니다. 소 귀에 경 읽기와 매우 흡사한 말입니다.제 답변이 질문자님께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학문 /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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