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부터 유교사상이 대세가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 부터 우리나라의 전통 신앙으로 자리 잡은 불교는 고려말 부터 종파간의 대립과 갈등이 더욱 심해지고 사회경제적으로도 많은 폐해를 일으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라한 폐해를 조선 초 유학자들은 비판 하고 새로운 사상인 유학을 발전 시켜 나가지요. 유학은 조선 건국의 기본이 되면서 기존의 불교를 대체 해서 자리 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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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가 개막했는데 야구의 유래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야구의 근대적인 틀은 19세기 북아메리카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역사학자 들은 야구라는 종목이 원래 북미 대륙에 건너 온 영국,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가지고 들어온 크리켓 이나 라운더스와 같이 공과 방망이를 사용하는 구기 경기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측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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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도 지금과 같이 마을 이장이나 통장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도 이장이 있었습니다. 면윤의 통솔을 받는 이정 혹은 이장의 임기는 3년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 이정의 지위와 역할은 첫째, 인구이동 현상의 시정 기능이 수령과 더불어 이정에 의해 집행되는 것이 제도화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정이 이내의 인구이동 현황을 수령에게 보고하지 않으면 장(杖) 70도의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둘째, 양민이 삭발하고 승려가 되는 풍조를 시정하는 데 이정과 수령은 같은 차원에서 통치책임을 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셋째, 출생 및 사망자 신고, 신도자(新到者) 신고의 임무를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호적법 시행에 있어 수령의 직무를 보좌하는 말단조직의 실무자인 것이지요. 이정은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오늘날의 이장(里長)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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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상임이사국에는 어떤나라들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 영국, 미국, ㅍ랑스 , 러시아등 5개국이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입니다. 한국의 유엔가입은 결국 1991년에야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1991년에 이르러 구 소련의 해체와 동구권의 몰락 등 국제정세가 급변하는 속에서 우리정부는 유엔가입 실현을 최우선 외교과제로 추진하였다고 합니다. 유엔은 3개의 부가적인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제네바, 빈, 나이로비에 있습니다. 그러나 뉴욕에 있는 본부 건물 만이 총화와 안전보장 이사회같은 유엔의 주요 기관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모든 15개의 전문 기구들은 뉴욕의 외부와 다른 도시들에 본부를 두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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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정책은?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왕권 강화의 대표적 시도는 광종 9년 과거제의 실시로 나타납니다. 광종 9년 5월 한림학사 쌍기를 知貢擧에 임명하여 詩·賦·頌 및 時務策으로써 시험하여 진사를 뽑게 하고 광종이 威鳳樓에 친히 나가서 방을 발표하고 甲科에 최서 등 2명도 급제를 주었던 것이다지요. 이 과거제는 다 아는 바와 같이 후주의 귀화인인 쌍기의 건의에 따라 처음으로 실시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 그런데 이 과거제의 목적이 바로 다름아닌 정치적 식견과 능력을 갖춘 새로운 관료층을 형성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하지요. 고려의 건국과 후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한 공신들은 대부분 武人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통일전쟁에는 필요한 존재들이었으나 통일 후 정치체제를 완성시켜 나가는데 있어서는 오히려 장애가 되는 존재들이었고 그들은 무력은 가지고 있었으나 정책을 수행해 나갈 능력은 부족하였기 때문인데 그리하여 과거제를 실시하여 유교적 학식으로 왕을 충실히 보필할 수 있는 신관료군을 육성하려 했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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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와 같은 카스트 계급에 있는 사람들이 간디의 영국 유학을 반대한 이유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간디는 바이야(평민) 계급 이였고 간디가 속한 모드 바니아(Modh Bania)카스트 세드에게 소환을 당했고, 여기서 유학 관련 설득을 빙자한 협박을 들었지만 간디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또한 많은 힌두인들이 믿고 있었던 바다를 건너면 그 계급( 카스트)를 엃게 된다는 힌두교의 믿음이 있어서 더욱 더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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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사우 중 먹은 어떻게 만들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 고유의 먹은 만드는 데 상당한 정성이 들어 갑니다. 먹을 만들 떄는 아교는 필수 입니다. 아교를 이중 솥에 넣고 장시간 끓여 액체로 만듭니다. 아교는 동물의 가죽,뼈,힘줄,창자등에서 추출한 콜라겐을 포함한 단백질의 일종(젤라틴)입니다. 아교는 동물의 뼈나 가죽이나 힘줄 등에 물을 부어 펄펄 끓여 추출한 동물성 단백질입니다. 그을음과 아교의 용액을 혼합기에 넣어 반죽합니다. 먹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작업이므로, 잘 반죽 하면 할수록 뻗어 나감이 좋은 쓰기 편한 먹을 만들 수 있습니다.반죽이 끝난 먹의 덩어리를 비빔판자 위에 펼치고, 손발을 사용 합니다. 그 때, 아교 냄새를 숨기기위해 향료를 넣고 잘 비비며 넣는ㄷ고 합니다. 그 후, 목형(木型)의 크기에 맞추어 먹의 덩어리를 떼어 내고 무게를 측정 합니다. 그리고 손으로 잘 비벼서 나무틀에 넣고 성형해서 먹을 만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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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변호사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외지부 라고 하는 직업 인데여. ‘외지부’란 밖에 있는 지부(知部)라는 뜻인데, 원래 이 명칭은 장례원(掌隷院)을 도관지부(都官知部)라고 지칭한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중종실록 5년 3월 26일(신사)』 장례원은 노비 문서와 노비 관련 소송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관사였는데 조선시대의 부(富)는 토지와 노비의 양에 달렸으므로, 당시에 이 관사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변호사가 법률지식이 부족한 약자를 도와 법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순기능이 있는 것처럼 당시의 외지부 또한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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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자씨의 동백아가씨는 왜 금지곡이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박정희 정권은 동백 아가씨 라는 곡을 일본의 엔카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방송 정지 처분을 하는데 물론, 한국의 트로트가 일본의 엔카와 비슷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전의 다른 가수들의 트로트 곡들은 그때까지 이런 시비를 걸지 않았으면서 유독 이미자의 곡들에 시비를 걸었다는 의아 합니다. 이외에도 동백꽂이 일본 꽃이라는 이유로 금지시켰다는 설도 있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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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간척사업은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최초의 대간척 사업은 1920년대 전라북도 옥구군(지금의 군산시) 금강 하구 미면간척지에 형성된 미면간척사업입니다. 일본 불이흥업주식회사가 옥구 반도 북단과 남단의 간석지를 대상으로 해안에 약 14km 연장의 방조제를 축조하여 2,500ha의 간척지를 개답하여 취락을 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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