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배달의 민족이라고 하죠! 그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배는 밝음, 달은 땅으로 밝은 터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고조선의 수도는 아사달이며, 아사는 처음, 새 이고 달은 땅으로, 아사달은 처음 땅, 새 땅 입니다. 배달은 조선, 한, 환, 밝다는 뜻으로, 우리 민족이 밝은 민족, 한민족 이라는 의미이며, 처음 국호를 배달민족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동북공정이란 말의 뜻은 무었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북공정이란 현재의 중국의 영토에서 발생했던 우리 민족의 과거 역사들을 모두 중국의 역사로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일본만 역사 왜곡을 하는게 아니라 중국도 역사 왜곡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동북 변강지역의 역사와 현재 상황에 대한 연구 사업이라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사회과학원 중국변강사지연구센터에서 동북 지역 3개의 성과 연합해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2001년 6월 부터 준비를 시작해 2022년 2월 정식 승인으로 추진이 되었습니다. 바이두에서는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을 한 윤동주 시인의 국적을 중국으로, 민족을 조선족으로 표기했고, 1932년 일왕 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 의사와 1932년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군 사령관을 폭사시킨 윤봉길 의사도 조선족으로 표기해서 왜곡하고 있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점잖하고 차분하다라고 표현할 때 어떻게 표현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점잖다'는 "의젓 하고 예의를 갖춘 상태에 있다"라는 뜻이기도 하고 어른스럽고 무게가 있는 느낌입니다.ex)점잖게 타이르다. '차분하다'는 "가라 앉아 조용하다"라는 뜻 으로서 사람뿐만 아니라 분위기 등에도 사용가능합니다. ex)카페의 분위기가 차분하다. / 그 사람은 차분한 성격을 지녔다. 그래서 연결해서 쓰면 ex) 그는 점잖고 차분한 성격을 가졌어. 라고 표현하는 게 맞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영국의 차문화는 어떻게 대중적인기를 끌게 됬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국에 처음으로 홍차를 마시는 붐을 만든 사람은 당시 영국 국왕인 찰스 2세에게 시집을 간 포르투갈의 캐서린 공주로 결혼 지참금으로 차와 설탕을 가지고 가서 차에 설탕을 넣어 마시는 방법을 영국 상류 사회에 유행 시키게 되었다고 합니다. 즉 AD 1662년부터 영국의 차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고 봐야 겠지요.
평가
응원하기
커피를 처음 마셨던 나라는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커피가 확실하게 어떻게 유래되었는지는 기록은 정확히는 없습니다. 그러나 커피 나무는 동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의 카파 주에서 발견되었고 서기 850년쯤에 시작된 것으로 증명되었으나, 어떤 이들은 중동의 예멘에서 서기 575년쯤에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처음 마신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옛날에는 한사람이 의사 과학자 예술가 건축가 등 여러가지를 했던거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과거에 천재 들이 다양한 직업을 할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그들이 천재이기 떄문이라는 것은 부인 할수 없는 사실 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직업의 전문화, 세분화가 지금 처럼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처럼 각종 전문 적인 직업에 대한 자격증, 즉 의사, 변호사, 국가 기술사 자격증이 등장한 시기는 20세기 초 1900년대 초에 들어와서 이루어 진것 입니다. 이때 부터 전문 자격증이 없으면 그 직업 행위를 할 수 없었기 때문 이였지요. 그래서 직업의 전문화는 이 시기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우리나라에도 협상전문경찰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경찰에는 전국적으로 약 400명의 경찰이 위기 협상 요원으로 활동 중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보통 과학 수사대에서 근무 하게 되는데 이들은 보통 또한 대학에서 심리학을, 대학원에서 범죄 수사학을 전공을 한 사람들 위주로 프로파일러 같은 일을 주로 하며 경찰에서 근무 하면서 경찰 내부적으로도 위기 협상 전문 교육을 받는 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왕 중 가장 예술에 뛰어났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대 임금 중에는 뛰어난 예술가들이 많았습니다. 조선시댜애는 제5대 문종(1414~1452·재위 1450∼1452)이 묘호에 걸맞게 문장과 글씨 솜씨가 걸출했다고 하지요. 중종 때 권신 김안로(1481~1537)의 설화집 에는 "상감(문종)이 해서법에 정통하여 굳세고 힘차고 생동하는 기운이 진인(왕희지)의 오묘한 경지에 이르렀으나 다만 석각 몇 본만이 세상에 전할 뿐"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문종은 시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하지요. "상감이 동궁으로 있을 때, 희우정(마포구 합정동에 있던 정자)에 거둥하여 금귤을 한 쟁반 내왔다고 하는데 그 귤이 다 하자 쟁반 가운데 시가 있었으니 곧 상감이 친히 쓰신 것이었다고 합니다. '물씬 물씬 향내는 코가 싱그럽고, 살살 녹는 단맛은 입에 착착 붙는다'는 시와 글씨가 모두 세상에 뛰어난 기이한 보배인 지라 여러 학사들이 그대로 모사하려 하는데 대궐에서 빨리 들여오라고 재촉하므로 다투어 쟁반을 붙잡고는 차마 놓지 못하였다."고 기록했습니다. 9대 성종(1457~1494·재위 1469∼1494)도 다재다능했다고 합나다. 는 "성종의 글씨는 아름답고 고우면서도 단정하고 정중하여 조용히 조송설(원의 서화가 조맹부)의 정신을 그대로 옮겨왔다고 하지요. 또 가끔 붓장난으로 소품을 그리기도 했다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탐라국은 하나의 나라였던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탐라국은 제주도의 옛 명칭이자 그곳에 존재했던 국가의 이름입니다.약 12세기까지 독립 상태를 유지했으며 조선 초기에 완전히 본국에 편입되고 이후 구한말까지 제주도의 이름을 계속해서 '탐라'로 부르다가 대한제국 시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제주'라는 이름에 밀려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고 하지요. 탐라국의 주민인 제주 원주민, 즉 탐라인은 탐라국이 있던 당시 육지의 한민족계와 완전히 다른 혈통은 아니었다고 합나다. 애초부터 한반도에서 공존한 고대 국가인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도 서로 말이 통하며 동시에 스스로를 삼한인이라 지칭하는 등 어느 정도 공통의식은 있었으나 서로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는데, 마찬가지로 가야인이나 탐라인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말하자면 본토 사람들과는 고구려-백제 관계와 비슷한 수준인 형제뻘 관계 정도. 한국이 현재 단일민족 국가이며 친척국가가 없다 보니 생소할 뿐이지 이런 형제뻘 민족이나 국가 관계는 지금도 세계 각처에 흔해서 이상할 건 없습니다.그리고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본토와는 차별되는 문화가 발전해 왔고, 언어적으로도 차이가 났다고 하네여.
평가
응원하기
조선시대의 왕 중 가장 자녀가 많았던 왕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왕 중 가장 많은 자녀를 낳은 왕은 29명의 자녀를 둔 태종이 꼽혔습니다. 이어서 각각 성종(28명), 선조(25명), 정종(23명), 세종(22명) 순이었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