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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학교는 왜 없어진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국민 학교이라는 용어는 일제시대부터 일본인 들이 자주 쓰던 단어입니다. 그이전에는 보통 학교 소학교라고도 불리었지요. 1996년 3월1일 삼일절을 기념해 국민학교 하는 용어를 안쓰고 초등학교라는 용어를 쓰게됩니다.
학문 /
역사
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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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에 대해서 현재 시점에 어떻게 보시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 전문가입니다.2024년까지 장기적으로 보신다면 추매를 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코인 시장이 완전히 죽지는 않을 것 입니다.다만 올해는 경가 하락과 침체가 예산되느 주식이던 코인이던 그렇게 장이 좋지는 않을테니 알단 버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경제 /
주식·가상화폐
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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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국내 호텔업 전망은 어떨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 전문가입니다.코로나19로 많은 근로자들이 재택근무를 하게 되고 가정과 일의 조화로운 병행에 대한 요구와 인식이 높아지면서 ‘워케이션(Workation)’, ‘호캉스’ 등 신개념 관광숙박 형태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또한, 비대면·비접촉 활동이 사회적 에티켓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자연 친화적 웰니스 여행, 문화 체험 등이 부각되면서 ‘중장기 체류 관광’등의 숙박 여행행태가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최근 회자되고 있는 관광 숙박 이용의 새로운 트렌드를 ‘호캉스’, ‘워케이션’, ‘중장기 체류관광(생활관광)’으로 설정하고 관련 경험과 이용행태 등에 대해 조사한 결과 호캉스의 경우 조사 대상 중 44.8%가 경험하였다고 합니다. 올해 에도 호텔 숙박업은 위드 코로나와 함께 점점 더 좋아 질 것으로 판단 됩니다.
경제 /
경제동향
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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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미카제 공격은 어떻게 생기게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신풍'이라는 말은 '(일본을 지켜 주는) 신의 바람', '신이 일으킨 바람'이라는 뜻으로, 1274년 원나라 쿠빌라이칸이 주도한 몽골-고려 연합군에서 이들이 바다를 건너오던 중 두 차례나 태풍을 만나 좌절한 것을 두고 "신령이 일본에 가호를 내려 준 것"이라 생각하여 '신풍(가미가재)'이라 이름 붙인 것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2차 대전때는 가미가재 특공대를 조직해 일본이 비행기로 하와이를 폭격할 떄 바로 전투기 이름을 가미갖 특공대 라고 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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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를 지은 이와 지은 목적이 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용비어천가는 왕권의 정통성을 강화함으로써 백성의 복속을 유도하고자 만든 대표적인 송축가였다고 합니다. 이 작업을 위해 당대 일류의 유학자들이 집결해 온갖 종류의 사서와 경전을 뒤져 하나의 모범적 사례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은 1945년 정인지를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에게 『용비어천가』를 편찬하도록 하게했습니다.
학문 /
음악
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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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왕의 후손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2014년 12월 13일 뉴욕 롱아일랜드 자택에서 대한제국 광무태황제(고종)의 다섯째 왕자 이강(1877~1955) 의친왕의 아홉 번째 왕자인 이갑(1938~2014) 황손께서 훙서(薨逝)하셨다고 합니다. 그의 호는 정강재(正康齋)로 본명은 이충길(李忠吉)이며 생존하는 의친왕계 및 대한황실 후손 중에서 장자(長者)가 되신다고 하네요. 그러나 대한제국이 주권을 잃은 후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출생하시어 황실구성원으로서의 적절한 대우는 고사하고 한국 외국어대 영어과 졸업 후 도미 하여 무역업에 종사하시며 평생 평민 같은 삶을 사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에 이르기 까지 대한황실이 복원되지 않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국민들과 함께 몸소 겪으신 역사의 산증인이 되십니다.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정에는 나라를 수치스럽게 일본에 내어준 이씨 조선의 황제들의 후손을 추대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가 봅니다. 그분들은 하나 둘 씩 세상에서 평범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고 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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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 세도정치가 펼쳐진 원인은 어디에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본격적인 외척 세력에 의한 세도 정치는 순조 때의 외척 김조순 일문에 의한 안동 김씨의 세도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순조 다음 헌종 때에는 안동 김씨의 세도를 꺾고 풍양 조씨가 세도를 잡았고, 다음 철종 때에 와서는 다시 안동 김씨가 들어섰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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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유배지를 갈 때 어떻게 갔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배형은 죄의 경중에 따라 2,000리, 2,500리, 3,000리 등 거리에 따라 3등급으로 구분하는데, 이는 단독으로 집행되기도 하였지만 대체로 장형(杖刑)을 수반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배형의 거리 규정이 『대명률(大明律)』 규정에 따른 것인데, 조선의 지리적 조건과 맞지 않아 시행 초 혼선을 일으키기도 하였다고 하는데요. 때문에 1430년(세종 12) 조선의 실정에 따라 각각 600리, 750리, 900리 등으로 유배 거리가 조정되기도 하였다지요. 그러나 3,000리 형이 원칙대로 적용되어 전국을 순회하거나, 여러 고을을 옮겨 총 거리를 합산해 채우기도 하였습니다. 예컨대 1776년(정조 1) 정조는 불경한 상소로 그의 심기를 건드린 김약행에게 사형을 감해서 유(流) 3,000리를 언도해 기장현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3,000리를 채우라는 정조의 특명에 의금부는 서울→기장현(970리)→강원도 평해(400리)→함경도 안변(940)→단천부(690리) 등으로 3,000리가 정확히 반영된 코스를 정한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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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교는 왜 극소수???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대 조로아스터교는 이슬람의 영향으로 교세가 쇠퇴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전 세계의 조로아스터교인들의 숫자는 100,000 명도 채 안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고 합니다. 인도의 2001년 인구조사는 조로아스터 교도의 자손인 파시교도가 69,601 명이었으며, 파키스탄에서는 그들의 숫자가 5,000 명으로 집계되었고 대부분 카라치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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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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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가전 박람회는 무엇입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 전문가입니다. 가장 큰 전시회는 유럽에서 하는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 (독일어:Internationale Funkausstellung 줄여서 IFA)는 매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제품 박람회입니다. 1924년에 처음 시작되어 독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산업전시회의 하나이지요. 독일가전통신전자협회(GFU)가 대회를 주관한다고 하지요. 그리고 미국에서 하는 가장 큰 전시회는 라스베가스 소비자전자제품 박람회(CES) Consumer Electronics Show 매년 개최 되는 CES 가 있습니다.
경제 /
경제동향
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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