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홍길동전이 가지는 문학적 가치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홍길동전에서 "평등 의식"은 존재하지 않고 홍길동 개인의 입지전일 뿐, 결코 계몽적인 메시지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다만, 홍길동전이라는 소설에 대한 비평은 계몽성을 내부에 숨긴 대중소설이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단순한 오락 소설이냐를 분간하려는 논쟁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 것이다.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적서 차별 제도와 탐관오리의 횡포를 비판한다. 그 당시 사찰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불리는 데 열중했기 때문에, 도적이 되어서 맨 처음으로 한 일이 바로 해인사 탈취였다. 즉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볼 수 있다.홍길동전의 의의는 철학에까지 왕조 사상의 프로파간다 때문에 사회적인 발전이 늦었던 동아시아에서, 서얼 제도라는 '피부에 와닿는' 요소를 통해서 차별 제도의 근본적인 모순점을 파헤치고, 이를 대중 소설로서 널리 읽히게 만들었다는 점에 있다. 비교 대상은 현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당시의 계급 제도를 두둔하는 프로파간다, 이에 길들여진 대중 소설들 사이에 계몽적인 성향을 스며들게 만들었던 작가의 통찰력이라고 보아야한다. 또한 당시의 부조리했던 관리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다.
Q. 한국과 미국의 한미군사동맹은 언제 해 어느 시기에 체결이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미군사동맹은 미국과 한국이 1953년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Republic of Korea)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미국은 현재 대한민국 이외에 유럽연합, 일본, 필리핀,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과함께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스라엘과는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습니다.이중 유럽연합의 나토와는 전쟁에 자동참전하는 형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와는 자동참전조항이 없습니다.따라서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비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말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대학살, 선제 핵공격 등) 사실상 의회의 비준은 무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Q. 조선시대 세금법인 대동법에 대해 쉽게 설명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공납을 지방 특산물에서 미곡으로 바꾸어 통일한 조선의 조세제도. 1608년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되기 시작하여 1708년에 완성되었다. 호역으로서 존재하던 각종 공납과 잡역의 전세화가 주요내용이었다. 대동법에서는 공물을 각종 현물 대신 미곡으로 통일하여 징수했고, 과세 기준도 종전의 가호에서 토지의 결수로 바꾸었다. 따라서 토지를 가진 농민들은 공납의 부담이 다소 경감되었고, 토지가 없는 농민이나 영세농민들은 이 부담에서 제외되었다. 대동세는 쌀로만 징수하지 않고 포나 전으로 대신 징수하기도 했다. 대동법의 시행은 조세의 금납화로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을 촉진시켰으며, 임진왜란 이후 파국에 이른 재정난을 타개할 수 있었다. 또한 공인들의 활동에 의해 유통경제가 활발해지고 상업자본이 발달했으며, 공인의 주문을 받아 수요품을 생산하는 도시와 농촌의 수공업도 활기를 띠었다
Q. 조선시대 포졸은 경찰이였나요? 군인이였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포도청에서 근무하는 군졸을 뜻하는 포도군사(捕盜軍士)의 줄임말. 사실 이런 일을 하던 사람들 전부를 포졸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소속이 포도청이어야 포졸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졸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애초에 조선에서 포도청은 한성에만 2개 있고, 나졸들은 일반 각 관아에 소속되어 있다. 이때문에 전국구로 활동한 임꺽정급이 아니라면, 포도대장과 포졸들이 다른 도에 투입되는 일은 많지 않았다.포졸과 나졸은 경찰 업무를 수행했지만 신분은 군인이므로, 헌병군에 더 가깝다. 물론 조선군 내에도 군뢰 또는 뇌자라고 하여, 체포, 형벌 집행을 전문적으로 하던 병사들이 따로 있었다. 조선시대를 다룬 사극에서는 빼 놓을 수 없는 요소이며 대개 엑스트라 겸 전투력 측정용 조무래기. 무력 좀 되는 주인공에겐 다수로 덤벼도 한 방에 나가 떨어지는 역하로 소비된다. 못해도 포교쯤은 되어야 1:1이 가능하다.
Q. 소크라테스의 와이프는 진짜 악처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소크라테스 아내 크산티페는 악처의 대명사 같은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말 많은 심술꾸러기였습니다. 소크라테스 같은 현명한 사람이 왜 그런 여자를 아내로 삼았는지 의심이 가는데, 그 점에 대해서 그 자신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마술(馬術)에 능숙하려는 자는 막된 말(馬)을 선택한다. 막된 말을 다룰 수 있으면, 다른 어떤 말을 타는 것이 쉽다. 내가 이 여성을 능히 견디어 낸다면 천하에 견디기 어려운 사람이 없을 것 아닌가." 또 어떤 이가 "용케도 부인의 잔소리를 참아 넘기십니다."하고 동정하는 말을 했더니,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도 자꾸 들으면 시끄럽지가 않네."하고 대답했답니다. 그의 아내가 악담 끝에 소크라테스의 머리 위에다가 물을 뒤집어 씌운 일은 잘 알려진 일화입니다. 그는 조금도 화내지 않고, "벼락 뒤에는 비가 내리기 마련이지."하고 말한 것은 악처의 악행을 자기 수양의 기틀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의지가 강한 여성을 비판하는 남성 작가들에 의해 지속된 고정관념이라고 지적했습니다.또한 철학 교수임네 하고 허튼 짓만 하고 다니며, 집안 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무능한 남편으로 크산티페는 생각했을 거고 늘 잔소리를 달고 살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Q. 우리나라의 사물놀이의 유래는 어떻게 온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원래 사물(四物)이란 불교의식에 사용되던 악기인 법고(法鼓)·운판(雲板)·목어(木魚)·범종(梵鐘)을 가리키던 말이었으나, 뒤에 범패(梵唄)의 바깥채비 소리에 쓰이는 태평소·징·북·목탁을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었다. 그리고 다시 절 걸립패의 꽹과리·징·장구·북을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어 오늘에 이른다.이러한 편성에 따른 음악은 1978년 최초로 ‘사물놀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된 연주단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이들의 농악을 다루는 연주 기량은 아주 뛰어났고, 농악을 무대용 음악에 알맞게 효과적인 방법으로 구성하였다. 그래서 농악의 생동하는 음악성과 치밀한 연주 기교는 상당한 반응을 일으켰고, 해외 연주활동을 통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도 하였다.
Q. 공중화장실을 가장 먼저 사용한 나라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원전 2800년, 신석기 시대이던 스코틀랜드의 주거지인 '스카라브레'에 배수구로 통하는 움푹한 벽 구멍이 공중화장실로 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대 로마에서는 매우 시설이 좋은 곳이라면 돌로 만든 좌변기에 수도를 끌어온 수세식이었는데, 해면으로 만든 스펀지가 달린 막대로 뒤를 닦고, 물에 씻어서 닦고 다시 물에 씻고 변이 쓸려가는 수도관 외에 다른 물줄기가 있어서 여기에 헹궈냈다. 물에 씻은 스펀지는 소금과 식초를 탄 물에 담가서 소독하였다. 칸막이 역할을 하는 게 없다. 이런 공중화장실은 하인들이 주로 쓰던 곳이고, 귀족도 쓰긴했지만 긴 옷으로 프라이버시를 지켰다. 기사. 참고로 이때 당시 공중화장실은 귀족용과 평민용같이 신분에 따라서는 나뉘어있었으나 남녀를 구분해놓지는 않아 남녀가 공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 중요한 화장실 매너중 하나가 자기가 쓴 걸 씻어두는 것이었다고. 간혹 공공 화장실에 상주하며 방문객들을 위해 이 막대로 뒤를 닦아주는 노예도 있었는데, 정부운영 혹은 지역 유지가 사회 기부(?) 활동 삼아서 자기 집 노예를 보내둔 거라고 한다. 스파르타쿠스에서도 바티아투스가 용변을 보고 일어서자 곁에 서 있던 노예가 막대로 뒤를 닦아주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바티아투스는 자신의 뒤를 닦아준 노예에게 동전을 던져준다. 4세기 로마 중심지에만 400여 개의 공중화장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