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할리데이비슨 회사의 역사를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03년 미국의 윌리엄 실베스터 할리(William Sylvester Harley)와 아서 데이비슨(Arthur Davidson)이 공동 창업하여 각각의 이름을 따 할리 데이비슨 이라고 지었으며, 이 회사도 마찬가지로 모든 모터싸이클 회사가 다 그랬듯이, 허름한 창고에서 엔진 자전거... 자토바이? 제품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11] 나름 상품이 팔리고 공장도 확장하면서 1909년에 지금의 할리 데이비슨의 상징이기도 한 45도 협각의 V 트윈 엔진을 만들었다.[12] 할리는 지금에 와서는 아저씨들이나 타는 느긋한 바이크로 인식되기 십상이지만, 모든 모터사이클 회사가 그래왔듯이 할리 역시 레이스를 통해 성장을 해왔던 회사다.우리나라에서도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더트 트랙 레이스[13]의 절대 강자였으며 각종 레이스에서 많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었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시 세계 최고의 성능을 발휘했던 이탈리아나 영국의 모터사이클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 레이스에 사용되었던 바이크들이 지금은 스포스터 시리즈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할리 역시 매우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1960년대 들어 가격이 싸고 엄청난 성능을 자랑했던 일본제 바이크의 공습 덕분에 주가가 곤두박질쳐서 레저 용품 회사인 AMF에 매각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지금도 그 시절의 잔재로 골프카트와 스노우모빌을 만들고 있다.AMF 산하에서 기존에 만들던 대배기량 바이크를 포기하고 소배기량 모델 개발에 주력하면서 스쿠터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기존의 고객마저도 외면을 하게 되어 정말 사라질 뻔 하기도 했으나, 경영진들이 엄청나게 노력한 덕분에 다시 경영권을 되찾고 할리 데이비슨만의 독특만 문화를 전파할 HOG[14]를 설립하고 그에 걸맞는 각종 뛰어난 모터사이클을 개발한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개발된 소프테일 시리즈의 공헌이 컸다. 특히 팻보이의 경우엔 엄청나게 팔려나가서 할리의 부활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또한 이후 뷰엘의 등장으로 "할리 엔진을 장착한 미국의 슈퍼바이크"를 만들었던 전력도 있어서 스포스터 엔진을 기반으로 흡배기 부분에서 크게 성능을 향상한 XB를 기반으로 하여 스포츠 바이크 시장에도 진출하게 되었다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부분은 뼈아픈 실패 경험을 축적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2000년대 중반, 유로 기준의 배기가스 제한이 세계적으로 채용되면서, 대부분이 공랭식 바이크는 재앙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고, 따라서 공랭 스포츠 바이크계는 BMW와 모토구치 등 극히 일부의 기준 통과치를 기대할 수 있는 메이커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멸하게 된다. 게다가 이 시기는 할리 데이비슨이 막 수랭 레볼루션 엔진을 채용하던 시점이었지만, 이 채용 혜택이 뷰엘에게는 돌아가지 않았다.[15] 대신 2000년대 말, 뷰엘사는 로택스사의 엔진을 장착한 수랭 스포츠 바이크를 출시하는데, 이미 이 시점에서 비슷한 계열 바이크를 생산하던 유럽 회사들인 KTM, 두카티, 아프릴리아 사의 제품군과 비교하기엔 떨어지는 성능이었고, 때문에 마케팅엔 실패하고 그냥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회사 정도로 남게 된다. 때문에 2000년대 말엽 마지막으로 나온 수랭식 모델을 끝으로 뷰엘사는 할리 데이비슨의 역사 뒤켠으로 사라지는데, 이후 창립자인 에릭 뷰엘이 독립하여 세운 EBR 모터사이클에서 뷰엘이 디자인한 프레임을 기반으로 한 스포츠 바이크를 제작하여 판매 중이고, 소량 하이엔드 컨셉으로 사실상 두카티나 KTM와 비교할만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16] 그러나 이젠 더 이상 공랭식 에볼루션 엔진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따라서 할리와의 연계는 이제 없어진 셈이 되어 버렸다. 뷰엘의 이탈 이후, 할리는 그 공백을 메꾸고자 XB 시리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하여 XR1200을 발매하게 되지만, 이 역시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했을 뿐 그리 많은 판매고를 거두지는 못하게 되었고, 2011년을 마지막으로 미국 시장에서는 단종되어 아시아와 유럽 시장에만 소량제작의 형태로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17][18] 허나 이때부터인지 바뀐 소비자의 기호를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 여러 전략들이 실행 되었으며, 현재는 수랭식 미들급 바이크인 스트리트 시리즈와 전기 바이크 컨셉의 시승회 등을 기점으로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로 서서히 전환중인 상황이라고 하겠다.
Q. 음악이라는것은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역사가 기록되기 이전부터 음악은 존재해서, 후대에 자연스럽게 노래나 악기연주 등이 전해졌어요. 그래서 여러가지 가설이 있을 뿐, 정확하게 이것 때문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음악의 유래에 대해 여러가지 설을 이야기 해드릴게요~ ^^ 먼저, 언어의 자연스런 억양에의해서 음악선율이 처음 나왔다는 학설이 있어요. 그러나 언어선율을 지니지 않는 자연민족도 있기 때문에 이 역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는 점이 있어요. 흥분된 감정에 의해서 나오는 음성에서 음악의 기원을 구하는 학설도 있어요. 또 집단노동에서 여럿이 힘을 합쳐야 할 때에 지르는 “이영차 이영차” 등의 리듬현상에 유래를 찾기도 하는데, 인간사회에서 집단노동이 발생한 것이 아주 오래된 것이 아니어서 이 학설도 그닥... 이외에도 신호로서 음을 사용하다 자연스럽게 발달 됐다던지, 주술이나 신을 추도하는 종교적 행위에서 유래됐다던지 하는 설이 있어요.
Q. 속담은 어디서 처음 만들어 지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흔히 속담은 전근대적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과거에 생성된 것이며 현재에는 생성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는 수가 있다. 물론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현재에 만들어진 속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크게 잘못된 표현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직 정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정된 어구로 정착하지 않았거나 언어대중의 인용사례가 드물고 공감의 폭이 넓지 않을 수는 있지만 속담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어구는 유행어구의 성격을 띠고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가령 20세기 초반에 발생한 것으로 현재 이미 완전히 정착한 속담에 '의사와 변호사는 나라에서 낸 도둑놈' 같은 것이 있으며, '중매 반, 연애 반' 같은 것은 어떤 사건에 자의(自意)와 타의(他意)가 반씩 섞여 있을 경우를 나타내는 속담으로 정착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가는 날이 장날 일을 보러 가니 공교롭게 장이 서는 날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뜻하지 않은 일을 공교롭게 당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어떤 사람이 친구에게 볼 일이 있어 큰맘 먹고 찾아갔는데, 마침 그날 마을에 장이 서는 바람에 친구가 장에 가고 집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해서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위와같이 생활에서 만들어졌습니다.
Q. 제사를 지낼때 술잔을 돌리는 이유는 뭔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가문에 따라 제상에 술을 올릴 때에 술잔을 돌리기도 하지만 전혀 돌리지 않기도 합니다.옛날 중국에서 "거한(去寒)"이라하여 제사 지낼 때에 향불 위에서 술잔을 돌려 술을 덥히려고 했다는 설이 있기는 합니다만, 미약한 향불의 온기로 술이 덥혀질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윗 분에게 술잔을 올리면서 그 면전에서 술잔을 빙빙 돌리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됩니다.각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관습을 따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재고해야 할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심지어는 돌리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좌(左)로 돌리느냐 우(右)로 돌리느냐는 논쟁이 있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