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죽부인의 유래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죽부인이라면 이곡이 지은 가전체 소설 '죽부인전(竹夫人傳)'을 연상하지만 여기서는 소설 죽부인전이 아니다. 가구 죽제품인 죽부인을 말한다. 고려 말 한문으로 씌어진 이곡의 소설 '죽부인전'은 여성의 절개를 대나무에 비유하여 당시 퇴폐해 가는 사회에서의 이상적인 여인상을 그린 것이다. 사회에 경종을 울리려는 의도가 담긴 소설이라 하겠다. 이같은 소설이 중국에도 있으니 송나라 장뢰와 원나라 양유정의 '죽부인전'이 그것이다. 둘 다 죽제구를 의인화한 고전 소설로서 맥을 같이한다. 이제부터 말하려는 '죽부인'은 대나무로 만든 피서용 취침 용구이다. 중국 당나라 때는 죽뢰술이라 불렀다가 송나라 때에 이르러 죽부인 또는 죽희(竹姬)라고 불렀다. 조선조 이유원의 글 '임하필기'에 보면 "무더운 여름 평상에서 죽부인을 두고 수족을 쉰다. 그 가볍고 시원함을 취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잘 마른 황죽을 참숯에 지지면서 엮어 만든 것으로 길이는 대략 넉자 반, 지름은 한아름 정도이다. 구멍이 나도록 성글게 짜서 원통형이 되게 한다. 살결이 닿을 때감촉이 좋고, 가시에 찔리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공정이 매우 까다롭고 잔손이 간다. 못이나 철사를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리고 숯을 지져서 색을 내는 거외에는 생숯을 칠하는 등 가공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여름철 땀에 씻기거나 묻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삼베 홑이불을 씌워 죽부인을 가슴에 품고 한 다리를 척 걸치고 자면 시원하게 잠을 이룰 수 있다. 구멍이 뻥뻥 뚫리고 안이 텅 비었기 때문에 시원함이 유지될 뿐 아니라 대나무의 촉감이 또한 시원함을 준다. 이래서 여름 한철 죽부인을 사용하는 것은 피서방법으로 최고이며, 자식된 도리로서 노부모에게 죽부인을 선물하는 것은 효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최근 죽부인을 선물하는 자식들이 늘어나 죽부인의 값도 이제는 매우 비싼 편이다. 일부에서 전하는 짖궂은 세간화(世間話)가 있다.아들 5형제를 둔 노부부가 아직도 잠자리를 같이한다. 형제가 밖에서 이 모습을 보고 투정을 한다.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 5형제를 두고도 모자라 또 자식을 만들려고 하니 딱하기도 하다. 여섯째가 태어나면 우리만 골탕을 먹는다. 업어 키워야 하고 똥오줌 치워야 하니 그 짓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이리하여 5형제는 궁리 끝에 부모를 격리시키기로 작정을 하고 대나무로 가짜 부인을 만들기로 했다. 뒤뜰에 무성히 자란 대나무를 쪼개 얼기설기 엮어 만들어 안고 자기에 알맞은 정도의 긴 죽통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버지에게 드렸다. 때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5형제가 만들어 준 죽통을 안고 자보니 사람을 껴안고 자는 것보다 훨씬 시원하고 잠이 절로 들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한없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한편 5형제는 나름대로 여섯 번째 동생이 생기지 않아 짐을 더니 기뻤다. 이를 이름하여 죽부인이라 한다. 그래서 부모가 쓰던 죽부인은 자식이 쓰지 못한다. 부모가 사랑스럽게 안고 자던 '죽부인'이기 때문이다. 죽부인은 담양 제품이 으뜸이다. 담양은 죽세공예가 발달하여 담양장은 전국 각지로부터 죽세품을 구하러 오는 상인들로 죽제품 시장으로도 유명하다.죽부인에 얽힌 탄생설화 부모님께 드리는 효도선물 대나무의 생태로 보아 절개, 순결, 곧고 바른 품성등을 상징하는 것은 동양뿐 아니라 동서고금을 통해 보편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은 대나무를 여성 상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죽부인도 여성화로 보는 것은 사용자가 주로 남성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일본과 중국의 설화에서 대나무의 여성화가 짙게 돋보인다.일본의 고대 설화 문헌이나 구전 설화의 한 유형을 이루는 다깨토리모노가타리와 중국의 죽중생탄설화(竹中生誕說話)는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일본의 설화부터 소개한다. 옛날 한 죽세공 노인이 대나무를 베고 있었다. 광채가 나는 대나무가 있었는데 가까이 가니 아름다운 여자아이가 대나무에서 나왔다. 그 아이를 가구야히매라고 이름지었다. 그녀는 크면서 더욱 미려해졌는데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구혼을 하러 왔다. 그러나 가구야히매가 낸 문제를 풀 수가 없어 모두 실패했다. 어느날 하늘에서 가구야히매를 데리러 왔다. 가구야히매는 노인이 일생 편히 먹을 것을 마련해 주고 보름날 달의 신선을 따라 달나라로 승천했다.한편, 중국의 죽중생탄설화의 하나인 반죽처녀(班竹 姑娘)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금사강 유역은 기후가 따뜻해서 여러 종류의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란다. 이중에서도 사람들은 남죽을 좋아했다. 이 강변에 한 가난한 여인이 아들 난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난빠는 어려서 대나무 숲에서 놀며 자랐다. 한편 이 지방의 영주는 욕심쟁이로 대나무를 깡그리 베어 팔아 폭리를 거두고 있었다. 어느날 난빠는 자기가 좋아하는 남죽 하나를 몰래 숨겨놓았다. 영주가 가버린 뒤 숨겨놓은 대나무 안에서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보니 여자아이였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어엿한 처녀가 되었다. 이들이 혼인을 해서 어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미인이라는 소문 때문에 난빠의 아내는 몇 번이나 고난을 당했으나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마침내 하늘이 이들을 도와 악당을 물리치고 행복을 누리게 해주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런 줄거리와는 좀 다르다. '형제와 개'라는 민담이 있다. 대나무가 하늘의 보고(寶庫)를 뚫어 하늘의 보물을 많이 얻게 된느 아우 이야기다. 또 그 형이 대나무를 베어다 저희 마당에 심었더니 하늘 뒷간을 뚫어 오물이 쏟아져 큰 욕을 보았다는 권선징악적인 요소가 농후하다.
Q. 왕들이 왜 강화도로 도망다녔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단 고려시대때는 수도가 지금의 서울이 아니라 위에 황해도에 개성이었고 조선시대때는 지금의 서울이 수도였었는데요 일단 그 시대에는 비행기가 없었고 있어봐야바다로 다니는 배 밖에 없었어요, 비행기가 없었던 시대다 보니까 이 시대에는 바다 한 가운데나 바다 위에 육지로 이어지는 길이없는 곳들은 공격하는건 수학 문제만치 어렵고 바다 한 가운데나 바다 위에 있는 성을 지키는입장에서는 학교 끝나면 집에 가는거처럼 쉽게 적을 막아낼 수가 있었어요,지도를 보면 강화도는 김포 바로 옆에 염하강이라는 바다나 다름 없는 좁은 강이 있는데고려, 조선시대에는 강화도하고 육지를 왔다갔다 할려면 배가 필수였었어요,비행기가 있었으면 비행기로 적의 성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보급을 쉽게 끊어버릴 수가 있고[해군으로도 끊을 수는 있는데 아무리 잘 싸워도 바다는 출렁출렁대기도 하고 거리에 따라서는적의 요새에서도 반격할 수가 있어서 해군만으로는 바다로 통하는 적의 보급을 다 막지를 못해요]그런데 그 시대에는 비행기가 없었고 배도 지금 시대보다는 안 좋았다보니까, 아무리 포위를 해도방어하는 쪽에서 미리 먹을 밥, 물 이런 거만 충분히 준비해두면 적이 오히려 쪼들렸거든요,게다가 강화도는 주변 바다가 험한데다가 특히 고려시대 때는 고려를 침략했었던 몽골군은육지에서는 진짜 싸움 실력이 날고 기다 못해서 텔레포트 하는 수준이었는데 바다에서는 영 아니올시다였었어요, 게다가 강화 바다가 원하게 또 험하지, 또 강화도는 서울 옆에 김포만 지나면 조그만 강만건너면 바로 강화도고 거기 안에 틀어박혀서 우주방어만 하면 어떻게 할 수가 없거든요,옛날이든 지금이든 전쟁에서 상대편의 왕이나 대통령을 잡으면 잡힌 쪽이 지는 건데 강화도 안에 왕이틀어박혀있고 몽골은 거기로 가고 싶어도 바다 항해 실력이 안 되니까 갈 수가 없고 또 고려 쪽에선 몽골이 아직 점령하지 못한 나머지 고려 지역, 즉 다른 사이드에서 고려군이 몽골군에 반격해서 몽골군하고 싸우면 되니까그럼 몽골군은 사실상 왕도 못 잡고 운동장 뺑이만 돌면서 서서히 무너져 가는 거거든요,조선시대때 병자호란때 왕 인조도 일단 먼저 세자하고 세자빈, 왕실 식구들을 가까운 천혜의 요새인 강화도로보낸 뒤 자기들도 갈려고 했는데 청나라 군대가 강화도를 점령해서 못 갔었거든요,[조선시대때는 고려때와 사정이 달랐는데 이때는 몽골군이 항해를 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 이것도 사실 강화도의 조선군은 수군까지 동원해서 몽골군을 잘 막아내고 있었는데.. 일부 지휘관들은잘 싸우고 있었는데 일부 지휘관들이 실수해가지고 강화도가 뚫렸죠...아무튼 바로 옆으로 도망가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자연 요새가 강화도였기 때문이에요
Q. 해외에서도 구정 신정을 나누는 문화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국의 새해음식은 딤섬이라고 하는 만두를 먹습니다...중국에서는 설 음식으로 물만두와 중국식떡을 먹는데, 이 두 가지를 다 먹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 북쪽 지방 사람들은 물만두를 먹고, 남방 사람들은 떡을 먹습니다... 하지만, 모두 일년 내내 행운이 있도록 빌기 위해서 먹는 음식입니다...일본은‘모찌’와 ‘소바’로 새해맞이를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보통 1주일 이상의 설날 연휴를 갖습니다... 구정이 없이 신정만이 유일한 설날이어서 그런지 휴일이 길뿐 아니라 성대하게 보내는데 비해 설을 새는 방식은 우리와 비슷합니다...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이 고향을 찾아 음식을 함께 먹으며 정담을 나눈다. 일본인들의 새해음식으로는 ‘모찌’와 섣달 그믐날의 특별 야참인 ‘소바(메밀국수)’를 들 수 있는데,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고다스(전기난로)에 둘러앉아 소바를 먹는 것이야말로 가장 일본인답게 새해를 맞이하는 풍습입니다...이밖에 일본사람들이 설날 먹는 음식은...가가미 모찌, 조니(떡국), 오세치 요리, 토소 등이 있습니다...서양과 동양의 새해 맞이는 매우 다릅니다...동양 사람들에게 설은 친척이나 가족끼리 유대감 형성을 위한 따뜻한 명절의 의미라면 서양 사람들에게 설이란 해가 바뀐다는 파티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서양인들은 12월31일 밤이면 친구나 가족들이 모여 밤새도록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춤추고 노는 새해 파티를 엽니다... 그리고, 12시가 가까워지면 누군가의 선창으로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새해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샴페인으로 건배하며 “Happy New Year!”를 외치면서 서로 포옹과 키스로 축하합니다... 이때, 가장 인기있는 사람은 검은 머리의 동양 남자... 이는 새해가 시작되는 순간 검은 머리의 남자를 보면 재수가 좋다는 미신 때문입니다...서양에서는 설날 연휴라는 것이 따로 없고 1월1일 하루, 혹은 길어야 그 다음날까지만 쉽니다...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12월31일 밤늦게까지 파티에 참석하기 때문에 새해 첫날에는 집안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침을 먹는 것이 보통입니다...멕시코에서는 특별한 새해 음식으로 포도 12알을 먹는 풍습이 있습니다... 여기서 12란 1년 열두달을 의미하는 것으로 멕시코인들은 한알 한알의 포도를 먹으면서 새해의 소원을 빕니다... 새해에는 집안 구석구석에 돈을 감춘 다음 가족들끼리 함께 찾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가족들끼리의 친목도 다지고 모은 돈으로 근사한 설날의 저녁상을 마련하는 효과가 있습니다...오스트리아는 세계적인 음악가 슈베르트, 모짜르트, 왈츠의 황제 요한 스트라우스, 500년 역사를 맞는 비엔나 소년 합창단을 배출한 나라답게 신년 축제인 음악회로 새해를 맞습니다...스코틀랜드는 Hogmanay라 불리는 새해맞이로 첫번째 방문자가 행운을 가져올 수도 있고, 불운을 가져 올 수도 있다고 믿는데, 까만 머리나 어두운 색깔의 머리를 가진 남자가 행운을 가져 온다고 믿습니다... 새해음식은 특별한 것이 없고 일반적으로 가족끼리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식탁이 채워지고 12월 31일에는 파티음식이 채워집니다...그리스의 새해 첫날에는 성자 Basil을 경축하기 위한 축제를 열고 Basil의 신발이라 정한 것을 화로나 불옆에 놓고 성자 Basil의 선물이 채워지기를 기원합니다... 음식으로는 바질로피타(vassilopitta)란 새해 이브 케익을 구워 먹습니다...이탈리아의 새해음식은 녹두를 넣어 요리한 음식과 발톱까지 보이는 돼지 족발 요리... 12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밤부터 새해로 이어지는 만찬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음식입니다... 새해맞이 음식으로 이 음식을 먹어야 부자로 잘 산다고 믿습니다...90% 정도가 회교도인 이집트에서는 회교력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1월 1일은 그들에게 전혀 특별한 날이 아닙니다... 하지만 요즘 이집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1월1일을 특별한 날로 보내는게 유행인데 이는 서양에서 12월 마지막 날에 여는 파티를 흉내낸 것입니다
Q. 서양권에서는 왜 문어를 잘 먹지 않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문어 , 낙지 ,오징어 , 해삼 , 멍게등 보기에 연체스러운 것들은 싫어하며 먹어도 거의 죽는 소리 내며 먹지요 .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어렸을적부터 교육받고 익혀온 풍습과 문화의 차이일 것입니다. 우리가 원숭이 골요리나 개미 요리 안먹는 거랑 똑 같지요.어떤사람은 사람시체냄새라고 하며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은 남자성기(남자분 아시죠?) 냄새 와 같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에 있는 미군이나 몇몇 외국인들은 잘먹는 친구들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