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불을 이용하면서 인류의 문명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인류가 불을 사용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 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선사시대의 인류는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연현상으로 일어나는 불을 몹시 두려워 하여 피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지능의 발달에 따라 화산 ·산불 ·번갯불 등 자연현상이나 자연 발생의 불을 이용할 줄 알게 되었다. 인류가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불을 사용한 가장 오랜 증거로는 북경원인(北京原人)이 거주하였던 중국의 저우커우뎬[周口店] 동굴의 발견인데, 전기(前期) 구석기시대 후반의 유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어 중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에서는 노지(爐趾)가 발견되었으며, 후기 구석기시대 이후에는 채난(採暖) ·채광(採光) ·조리(調理) ·방위(防衛) 및 도구의 제작 등에 불이 이용되었던 사실이 분명하게 되었다.신석기시대에는 충격이나 타격에 의해서 인류 자신이 직접 불을 일으킬 수 있는 발화기(發火器)를 발명하였고, 특히 불로써 음식물을 요리하고 건조 ·저장할 수 있게 되어 영양 섭취의 급격한 증대에 따라서 생활 능력도 더욱 확대되었다. 또 점토(粘土)를 불로 구워서 만든 토기가 발명되어 생활기술이 한층 더 진보되었으며, 마침내 아주 높은 온도의 화로에서 금속기구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됨으로써 석기시대에서 금속기시대로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Q. 삼국지에서 유비의 책사인 제갈공명은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 뛰어난 통찰력일단 삼국지 정사를 읽어보진 못했지만 삼국지연의를 보면제갈공명은 뛰어난 통찰력, 즉 미래를 보는 시각이 아주 뛰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천하삼분지계가 아주 좋은 예인데요. 당시 중국은 여러 제후국들이 세력을 떨치며서로 먹고 먹히는 양육강식이 지배하는 세계였습니다. 하지만 유비가 제갈공명을 맞이하는 때는 중원과 하북을 모조리 점령해버린조조가 이미 나라의 기틀을 갖추어 북쪽의 어지러운 전란을 종식시켰고동오는 이미 손씨집안이 대대로 다스리고 있는터라 유비가 마땅히 기반을 둘데가 없었죠.그때 제갈공명은 아직 기틀이 잡히지 않는 유일한 한곳.서촉. 여기를 일단 먹어야 당장은 위와 오에 대항하여 나라를 세울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한겁니다. 이것은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군주가 무능하고 지배력이 약한 유장의 나라를빼앗고 거기에 나라를 세운것은 앞으로 중원으로 뻗어 나 갈수 있는 기회를 노리기에 적절한 곳이었죠. 촉은 비록 인구와 경제력은 부족하지만 지형이 험난한 천해의 요새였기때문에 소수 군으로도 방어하기 좋았기 때문입니다.(그리고 갈때가 여기밖에;;) 그리고 옛날 한나라의 태조 유방이 촉에 있다가 초의 항우를 물리치고 한왕조를 건설했으니...... 그들이 촉으로 가는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2.전략 전술이거 외에도 잘 아시다시피 제갈공명은 뛰어난 전략을 겸비한 모사였습니다. 연의에서좀 부풀려 과장한 면이 없지도 않지만... 거기에 따르자면 적벽대전에서 화공계를써서 조조를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소규모 전투에서도 정말 귀신같은 전략과 전술로 물리치죠. 3.외교술외교술 또한 가히 칭찬할만 할 수 있습니다. 유비가 형주에 머물러 있을때 동오는 형주를 못먹어서 안달이 났었죠. 근데 뛰어난 외교술로 노숙과 동오를 이해시켜 감히 침범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손권의 동생을 유비와 결혼시키고 데려와 양국의 우호?를 성립시켜유비가 뒷걱정 안하고 촉으로 갈 수 있게 외교적 기반을 잘 만든거지요. 촉으로 갈때제갈량의 외교술로 오와 위(조조)를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시간도 벌구 적들의 에너지도탕진하게 하였으니 과연 제갈량은 뛰어난 외교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볼 수 있습니다. 4. 뛰어난 통치능력 제갈량은 유비가 죽은뒤에 무려 9번?..(부정확) 이나 위로 출정을 했습니다.촉의 국력으로 이렇게 많이 출정할 수 있다는것은 뒷받침 즉 내정이 잘 되있었다는 소리입니다. 9번이나 출정하면 그만큼 세금도 많이 쓰여지고 장병들도 많이 쓰여지는데..이렇다면 자연스럽게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지겠죠? 근데 제갈량이 통치했을때는 이러한불만들이 상대적으로 약했습니다. 즉, 원성이 잦아들지 않도록 제갈량이 여러 내정의 기반을 잘 쌓았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럼으로써 촉은 수시로 위나라를 괴롭힐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 통찰력에 관한 얘기를 하나 더할까 한데요. 제갈량이 수시로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점입니다.비록 전쟁으로 인해 많은 국력을 소모해야 했지만, 이렇게 함으로써촉나라는 전쟁을 직접 수없이 많이 경험해본 장병들을 모을수 있다는 겁니다. 병사들이 전투를 하지않고 태평성대를 누리다보면 사기는 헤이헤지고 전투경험이 줄어들어 나라의 전투력이 약해집니다. 그렇다면 촉이 엄청난 국력을 지니고 있는 위나라에게먹히는건 시간문제이거든요. 그러니 전쟁을 비록 승리는 못하더라도 어느정도 실전훈련을 계속 쌓아서 정예병을 만들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위나라도 감히 쉽게는 못쳐들어오겠죠. 아마 제갈량은 이것도 염두해두고 전쟁을 수시로 일으킨것으로 보입니다.
Q. 미국 프로레슬링은 쓰여진 각본대로 경기하나?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프로레슬링은 일반적인 스포츠 종목이 아니다. 프로레슬링은 승패 여부와 대다수의 기술 시전 및 접수, 선수들 간의 대립 및 세그먼트 전반을 정해진 각본에 따라 수행하는, 엔터테인먼트 쇼이자 극(劇)의 한 갈래이다. 프로레슬링은 실제 스포츠가 아니다보니 진입장벽도 꽤 높은 편인데, 불과 2000년대만 해도 프로레슬링이 각본에 따라 진행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고, 2022년이 된 지금 기준으로도 프로레슬링 자체를 몰라서 각본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모르거나 이런 진행 방식 자체를 이해 못 하는 경우도 많다.이 각본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로레슬링은 일반적인 격투 스포츠(UFC, 복싱)와 비교했을 때, 각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점에 주목하면 좋다. UFC나 복싱에서도 경기 상대를 정하는 부킹, 경기 전 상대 선수를 향한 도발, 경기 후의 마이크웍, 계체량 측정이나 링 입장 시의 모습 등 흥행을 위해 일부분 각본과 퍼포먼스가 가미되어 있다. 그런데 프로레슬링은 선수가 실제로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몸을 날리는 순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부분이 각본과 시나리오의 통제하에 놓인다. 먼저 프로레슬링 선수는 선수라는 정체성부터가 각본에 의한 기믹(캐릭터)이다. 프로레슬링 선수는 자신에게 정해진 기믹에 따라서 성실히 연기를 하며, 상대 선수와의 대립, 도발, 부킹, 경기 진행, 기술 사용, 승패 여부 등 온갖 부분이 철저히 각본에 의해 결정되고 진행된다. 단순 비율로 따지면 일반 격투 스포츠는 각본과 실제가 2:8이라고 한다면, 프로레슬링은 각본과 실제가 8:2에 가깝다.
Q. 제사에 사용하는 과일의 의미가 무엇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대추단단하게 열매가 가장 많이 열린다.(튼튼한 자손을 많이 낳아 집 안을 이어간다는 뜻)순수한 혈통을 의미한다.태양이 속해 있는 대 은하계 모형을 나타낸다.(진설상에 으뜸이다.)강한 번식력(대추나무는 밑 뚱을 베어도 사방으로 뻗친 잔뿌리에서 싹이 나온다)씨가 하나밖에 없으며 크다(임금이 될만한 후손이 나오라는 뜻)꼭지가 단단해서 비바람이 몰아쳐도 열매가 안 떨어진다.(자식을 낳았으면 어떻게든 놓지 않겠다는 마음)밤밤은 심어놓고 나무가 자라도 심었던 밤은 썩지 않고, 자손을 퍼트리면 그때서 썩는다(자기와 조상의 영원한 연결)자신의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밤 속에는 밤알이 세 개가 들어있다(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을 뜻하며 삼정승이 나오라는 의미)배황금색, 누런색 과일(자손이 부 하게 하는 의미, 황인종, 오행에서 황색은 우주의 중심으로 민족의 긍지를 나타냄)속은 하얗다(백의민족, 순수함, 밝음, 자손이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깨끗하라는 의미)수분이 많다.(수분은 지혜를 의미로 깨달음의 정신으로 가라는 뜻씨앗이 여덟 개(팔도의 관찰사를 의미)감열매가 열리는 감나무는 속에 검은 신이 있다.(부모가 자식을 낳고 키우는데 그만큼 속이 상하였다 하여 부모를 위해 놓는다.)감나무 상징하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다 사람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워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뜻가르침을 받고 배우는 데에는 생가지를 칼로째서 접붙일 때처럼 아픔이 따른다.(그 아픔을 겪으며 선인의 예지를 이어받을 때 비로소 하나의 인격체가 될 수 있다)감나무가 어느 정도 자라면 고욤이 열리는데 단감이나 대봉 같은 감나무를 만들려면 그 가지를 잘라붙히면 단감이나 대봉이 된다고 한다.(사람도 나이가 차면 혼인을 하고 배우자와 함께하라는 의미)감은 씨가 6개로 육조판서를 의미함
Q. 설날하니 까치동요가 궁금하네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한 스님과 내통하여 왕을 해하려 하였는데 까치(까마귀)와 쥐, 돼지와 용의 인도로 이를 모면하였다. 이때부터 쥐, 돼지, 용은 모두 12지에 드는 동물이라 그 날을 기념하지만 까치를 기념할 날이 없어 설 바로 전날을 까치의 날이라 하여 까치설이라 이름 지었다.이 동요에서 노래하듯이 '우리 설날'이 오늘이고, '까치설날'이 어제라면, 정월 초하루가 우리 설날이고 그 전날인 섣달 말일이 까치설날이라는 말이 되는 셈입니다. 요즘에야 꼭 그렇지는 않다고 하지만, 오랫동안 우리 민족은 까치를 길조로 생각해 왔습니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속설도 까치에 대한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어느 이야기나 설화에서도 까치가 설날을 쇤다거나, 까치설날이 1월 1일의 전날이라는 것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동요에서 말하는 '까치설날'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의 전통 풍속에 의하면, 12월 말일을 '섣달 그믐'이라고 했습니다. 이 날은 한 해의 마침으로서 연중의 거래 관계는 이 날에 청산을 하며, 각 가정에서는 새해의 준비와 연중 거래의 주고받는 일로 분주했던 날이었습니다. 밤중까지도 빚을 받으러 다니는 이도 있으나, 자정이 지나기만 하면 정월 대보름날까지는 독촉하지 않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섣달 그믐날 대개 중류 이상의 집에서는 가묘(家廟)에 절을 하고, 연소자는 존속의 친척, 또는 친지간의 장로(長老)를 두루 찾아뵈니, 이를 '묵은해 새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집안에서도 자제 부녀들이 모두 집안의 어른들께 묵은해 세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한 해의 시작인 1월 1일의 '설날'도 중히 여겼지만, 또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섣달 그믐날도 중히 여겨온 것을 이러한 풍습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예전과 같은 풍습은 요즘 별로 지켜지지 않지만, 지금도 섣달 그믐을 '설날'에 대비하여 '작은설'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17세기 말에 이루어진 어휘집인 ≪역어유해(譯語類解)≫라는 문헌에는 다음과 같은 어휘들이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