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중국의 전통의상을 무엇이라고 부르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치파오입니다 청대(淸代)에 형성된 중국의 전통의상이다. 원래 남녀 의상 모두를 이르는 말이지만, 보통 원피스 형태의 여성 의복을 지칭한다. 몸에 딱 맞는 형태의 옷이며, 치마에 옆트임을 주어 실용성과 여성미를 강조하였다. 옷깃은 흔히 차이니즈칼라라고 불리는 스탠드칼라이며, 치마와 소매의 길이도 다양하다. 면으로 만든 실용적인 것에서부터 비단에 여러 가지 자수를 놓아 화려하게 만든 것까지 다양하다. 또한 어떤 체형에나 잘 어울린다.청나라를 세운 만주족(滿洲族)의 기인(旗人)들이 입던 긴 옷에서 유래하였으며, 한족(漢族)이 이를 치파오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청나라 순치제(順治帝) 원년에 수도를 베이징[北京]으로 옮기면서 치파오가 중원에 보급된 후 청나라 후기에 이르러 한족이 만주족의 옷차림을 모방하며 인기를 얻었다.신해혁명을 거치며 서양식 의상의 영향을 받아 이전의 화려하고 복잡한 형태에서 간결한 디자인과 우아한 색깔로 변하였다.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에는 서양의 미니스커트의 영향으로 치파오의 치마와 소매 길이가 무릎과 팔꿈치까지 짧아졌다. 1930년대 중반에는 다시 치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길어졌다. 반면 옆트임은 허벅지까지 올라갈 정도로 과감해졌고, 허리선 역시 더욱 강조되었다.1940년대 들어와 실용성이 강조되면서 치파오의 길이가 다시 짧아져 종아리까지 올라갔다. 또 장식을 배제한 단순한 형태가 주를 이루었다. 1966년부터 10년 동안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다른 전통 문화와 마찬가지로 치파오 역시 쇠퇴기를 맞았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그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국제패션대회에서 수상을 하는 등 홍콩·타이완·화교등을 중심으로 계속 발전하였다. 현재는 다양한 옷감과 디자인으로 중국의 예복으로 자리잡았다.
Q. 노란리본의 유래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노란 리본은 여러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는 인식 리본의 한 종류이며, 종종 사람이 착용하거나 나무 등에 묶는 리본이다. 무사생환을 바랄 때 등, 다양한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노란 리본을 다는 활동주의 행동인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은 1979년 이후 세계 전역에서 여러 차례, 다양한 의미에서 이뤄졌다. 2014년 4월 대한민국에서는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이 인터넷을 통해 널리 확산되었다. * 유래 대부분의 미국 음악 역사가들은 노란 리본을 사용하게 된 관습은 19세기 미국 독립 전쟁 또는 미국 남북 전쟁 시절 엔더슨빌 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끝내고 귀가하던 한 수감자의 얘기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역사가들은 지난 4백여년 동안 여러 형태로 불려지고 있는 George Norton이 작곡한 노란 목도리를 맨 여인이라는 의미의 'Round her neck she wore a yellow ribbbon' 에서 노란 리본의 전통을 찾기도 한다. 1949년에는 이와 유사한 'She wore a yellow ribbon' 이라는 존 웨인 주연의 영화가 나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1973년에 토니 올랜도와 돈이 처음로 발표한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오래된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라는 노래로 노란 리본은 더욱 유행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이 노래에는 전설같은 얘기가 따라다니는데, 1900년대 초에 3년 여 동안 감옥에서 생활하다 나온 사람이 뉴욕에서 플로리다 주를 향해 가던 버스 안에서 버스 운전사에게 전해 준 실제로 벌어졌던 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후 1971년경에 뉴욕 포스트의 피트 해밀이라는 칼럼니스트가 자신이 들은 한 전과자의 이야기를 재구성해서 'Going Home'('귀향')이라는 글로 신문에 발표했고, 그 다음 해에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잡지에 게재되었다. 사실 미국 전역에서 노란 리본이 가장 많이 목격된 것은 1979년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발생한 뒤부터였고, 걸프 전쟁에 미국 군인들이 대규모 참가하면서 노란 리본은 더욱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세계 제 1차, 2차 대전 때만해도 노란 리본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으며, 베트남 전쟁 당시에도 참전 용사들의 무사 귀환을 빌기 위해 나무들에 노란 리본을 매달기는 했지만 오늘날 처럼 대규모로 노란 리본이 걸린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