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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동연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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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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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8.15 대통령 저격사건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은 1974년 8월 15일 제 29주년 광복절 기념식 행사장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사를 낭독하고 있던 도중인 10시 30분경 발생한 것으로써 조총련계 문세광(文世光, 당시 22세)은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육영사 여사가 운명하셨습니다1968년 김신조 일당을 침투시켜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좀 더 치밀한 계획하에 일본 조총련 소속 간첩 문세광을 1974년 8.15 광복절 행사장에 침투시켜서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려 했던 것으로 정황상 북한의 최고위층 지시로 자행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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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행복한 눈물이라는 작품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리히텐슈타인의 유작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행복한 눈물’은, 이제는 팝아트의 아이콘이 되었는데요. 그렇다면, 그림 속의 여인은 왜 ‘행복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일까요?​눈물은 감정이 극한으로 치닫게 될 때, 예를 들어 너무 슬프거나 혹은 너무 기쁠 때 생겨나는 매우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의 결과죠. 살짝 미소를 띠고 있는 그림속의 이 여인에게서는, 무언가 슬프고 마음이 상한 일이 있었다기 보다는, 가슴 벅찬 행복과 앞으로 다가올 좋은 날들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안고 있는 것이 느껴지죠? 굳이 누군가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 그림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분 좋은 아우라(aura)를 감지하게 합니다.​만일 이 그림속의 여인이 오랫동안 사랑의 상처 때문에 가슴 아픈 시기를 거친 후, 그 상처를 치유해주고 새롭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면, 그에 대한 설렘과 기쁨 때문에 '행복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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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건무 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구려 영양태왕의 동생으로 무예가 출중하며 지략이 뛰어났다...고수전쟁때 활약한 인물로 1차 침입땐 해전으로 승부에 수나라 수군 사령관 주라후를 여지없이 깨뜨렸다... 2차 수나라 침입땐 내호아와 주법상이 이끌던 수나라의 300 함대를 모두 수장시켜 버리며 수나라 7만 수군중 수천명이 살아서 본국으로 돌아갔다...후에 영양태왕을 이어 영류왕이 되지만 말년엔 나이가 들어 그런지 보수적으로 바뀌며 신 흥 무인세력에 의해 큰 미움을 받는다... 친당정책을 펼치다 반당파의 대표인 연개소문의 쿠데타에 죽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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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웅산묘소 폭발사건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2009년 북한이 노동당 소속이었던 작전부와 35호실을 인민무력부 소속의 정찰국과 통합해 '정찰총국'을 신설하고 역시 노동당 소속이던 대외연락부를 대외교류국으로 격하해 내각에 배속시키는 등 각종 공작기관들을 구조조정​1987년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건을 일으킨 김현희가 작전부 소속​35호실 = 북한의 해외정보기관인 '대외정보조사부'의 별칭. 주로 대외 및 대남 정보수집을 담당하고 있으나 과거 대남.해외 테러공작 주도​정찰국 =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소속으로 간첩양성 및 남파 등을 임무로 하고 있으며 요인 납치 및 암살, 전략적 모략공작, 핵심전략시설 정찰 등도 하고 있음.1983년 아웅산 폭파사건과 1996년 동해안 무장간첩 침투 사건을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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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판문점도끼 사건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북한의 판문점도끼 만행사건은 1976.8.18 오전11시에 공동경비구역내(JSA)에 미군초소의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를 제거하기 위해 미군장교와 한국노무자들의 도끼로 나무제거 작업을 하던중 갑작기 수십명의 북한군 병사들이 노무자들에 달려들어 도끼를 빼앗아 지휘감독하는 미군장교2명을 잔인하게 살해를 한 사건 입니다.사건이후 제2에 한국전쟁이 일어 날 위기가 있었고, 공동경비 구역내에 유엔군과 북한이 자유로히 왕래를 하는 구역에 남과북이 경계선을 긋고 넘어갈수 없이 확고히 경계선을 그어져 있습니다.북한은 우리의 강력한 군사력을 알기에 한미방위조약에 따라 주한미군이 있기에 우리에게 입에 담지 못하는 말을 하고 미사일을 수십차례발사를 하면서도 도발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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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8년간 독재한 박정희때 영구집권 하려한 유신개헌과 박정희의 독재에 저항하던 김대중을김대중이 다리 치료차일본에 있을때 . 중앙정보부에서 김대중을 납치해서 일본바다에 수장하려다 미국 CIA에 들켜서. 미국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살았습니다.​김대중노벨상 평화상도 박정희.유신독재.전두환독재.저항하고.자유민주주의 .인권운동에 헌신.수십년한 공로 인정받아 노벨상 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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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초로 수능이 치뤄진때는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최초 수능시험은 1993년입니다대입학력고사:1982 년도부터,대학예비고사:1969년-1981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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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낙동간 페놀사건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발생일시: 1991년 3월 16일, 1991년 4월 22일 (2번 이나 일어남) 장소: 대구 낙동강 사건: 제1차 페놀 오염은 구미공단 두산전자에서 페놀원액이 파손된 파이프를 통해 낙동강으로 유입되었으며 정수장에서는 페놀원액의 유입사실을 모르고 엽소투입량을 늘려 염소와 페놀이 반응하여 클로로페놀을 생성하여 악취가 심하게 발생하여 이 물을 마신 주민들은 두통과 구토 증세를 보였다. 제2차 페놀오염은 두산전자가 다시 조업을 시작한지 5일만에 발생 하였다. 부실보수공사로 인해 페놀탱크 파이프 이음새 부분이 파열되어 페놀용액 1.3톤 가량이 낙동강으로 유입되어 대구, 부산지역에 식수공급이 중단되었다. 피해: 이 사고에 대한 피해보상을 요구한 신고건수는 1,958건에 액수는 24억 5천만원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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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글은 언제부터 가로로 쓰기 시작했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가로쓰기는 어려운 말로 횡서라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쓰는 것처럼 왼쪽에서 글이 시작하는 것이 좌횡서, 중동처럼 오른쪽에서 시작하는게 우횡서입니다.이 횡서는 우리나라에서 정확히 어느 시점부터 땡 하고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45년 광복 이후부터 점차적으로 도입이 되었습니다. 다만 신문의 경우 우종서(오른쪽부터 시작하는 세로쓰기)를 90년대까지 썼다가 지금은 쓰이지 않습니다.저도 어린 시절 신문이나 옛날 성경책을 보면 우종서로 쓰여있던 것들을 많이 봤습니다. 집에 옛날 책들이 아직 많이 있는데, 우종서로 쓰인 책이 은근히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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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천이라는 과학자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정의​1376(우왕 2)∼1451(문종 1). 조선 세종 때의 무신·과학자.​생애 및 활동사항​본관은 예안(禮安). 호는 불곡(佛谷). 군부판서 이송(李竦)의 아들이다. 1393년(태조 2)에 17세의 나이로 별장(別將)에 임명되었고, 1402년(태종 2)에는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세종 때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는 데 큰 공을 세워 충청도 병마 도절제사로 임명되어 병선(兵船)을 만드는 일에도 힘쓰게 되었다.​이 때부터 그는 물리학자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무예를 닦으면서도 틈틈이 여러 기계장치의 원리를 생각하고 연구하였다. 특히 금속공예와 그 주조법에 조예가 있어 세종은 그를 공조참판으로 임명하여 새로운 청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를 만드는 일에 힘쓰게 하였다.​경자자의 주조로 인쇄 능률은 많이 좋아졌으나, 좀더 아름다운 자체(字體)와 인쇄 능률을 높이기 위한 주조사업이 다시 시행되어, 마침내 1434년(세종 16)에 갑인자(甲寅字)의 완성을 보게 되었다. 20여만 개의 대소활자로 주조된 이 갑인자는 자체가 훌륭하고 선명할 뿐만 아니라, 큰 활자와 작은 활자를 필요에 따라 섞어서 조판할 수 있는 발전적인 것이었다. 갑인자의 인쇄로 조선의 활판인쇄기술은 일단 완성되었다.​그는 또한 서운관에서 정초(鄭招)·장영실(蔣英實)·김빈(金鑌) 등과 수년 동안 노력한 끝에 1437년에 대간의(大簡儀)·소간의·앙부일구(仰釜日晷)·현주일구(懸珠日晷)·천평일구(天平日晷)·정남일구(定南日晷)·규표(圭表) 등의 해시계를 만들었고, 선기옥형(璿璣玉衡)이라고도 불리는 혼천의(渾天儀)를 제작하였다.​또한 그는 평안도 도절제사가 되어 평안도와 함경도 변방에 나타나는 야인(野人:만주족)들의 침략을 막고, 그들을 토벌할 때 여진족에게서 얻은 중국의 제철기술을 바탕으로 수철(水鐵:무쇠)을 연철(軟鐵)로 만드는 기술을 익혀 부족한 구리 대신에 쇠로써 대포를 만드는 등 화포의 개량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밖에 병선 만드는 일에도 관심이 있어 갑조법(甲造法), 즉 판자와 판자를 이중으로 붙이는 방법의 시행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시호는 익양(翼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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