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사람인데 어떻게 독일의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히틀러는 오스트리아 국민이었는데 당시 히틀러는 민족주의에 극도로 심취한 상태였습니다. 이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다민족 국가였기 때문에 히틀러는 독일민족주의에 심취한 결과 오스트리아 정부가 발송한 징집명령을 거부하고 독일의 바이에른주로 도망을 갑니다. 바이에른주는 독일인만 살고 있었기 때문에 히틀러는 바이에른군대에 자원입대해 전쟁에 참전합니다.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민족주의가 2차 대전 당시 보다 약했습니다. 유대계 독일인들도 독일군으로 참전을 했었습니다. 당시 유럽의 여러 제국에는 귀족과 평민이라는 계급이 있었기 민족 보다는 계급이 더 일반적인 장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틀러는 독일인, 체코인, 헝가리인 등등으로 구성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군대가 아니라 독일인으로만 구성된 독일군으로 1차 대전에 참전합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독일제국의 동맹국인데다가 독일어를 사용하는 독일계라는 점 때문에 독일군에 입대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습니다.당시에는 독일 국적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독일제국은 많은 왕국들과 공국들이 합쳐진 연방제 당시에 바이에른이라는 말은 바이에른왕국과 같습니다. 바이에른왕국이 독일제국의 일원으로 되었으나 바이에른왕국의 왕족, 귀족의 특권과 왕국의 영토는 그대로 유지가 되었고 군대도 바이에른왕국의 국민들만으로 구성이 되었으며 전쟁 때도 바이에른군대가 바이에른왕국의 귀족이 지휘하면서 독일제국군으로 참전했습니다.그래서 역사책에는 바이에른군에 자원입대했다라고 나옵니다. 결국 바이에른왕국으로 간 히틀러는 바이에른왕국 군대에 사병으로 자원 입대 하는데 스스로 입대를 하겠다고 하니 군대 입장에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히틀러는 정확하게 말하면 독일제국군 예하 바이에른왕국 군대 소속 바이에른 16보병연대에 입대해 1차 대전에 참전합니다.
Q.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7을 행운의 숫자라고 하는건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동서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7을 ‘행운’의 숫자라고 생각한다.동양에서는 죽은 자의 영혼이 육체에서 풀려나 자유로워지는 데는 일곱 단계의 시간 단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7일 단위로 모두 일곱 번 제사를 지냈다. 7은 그리스 신화에서도 중심을 이루는 숫자다. 아폴로가 세상에 나온 날도 7일이었으며, 로마인들에게 7은 길한 수였고 행운의 수로,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경기에서 많이 쓰였다. 또한 중국에서 7은 여자의 수로 일컬어지는데, 중국인은 칠삭둥이는 살 수 있어도 팔삭둥이는 살지 못한다고 믿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속죄의식을 치를 때 피를 일곱 번 뿌렸다. 결혼식도 7일, 추모기간이나 큰 축제도 7일간이었다. 불교에서도 석가모니는 7년 동안 구도의 고행을 했으며, 명상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보리수나무를 일곱 바퀴 돌았다. 극락은 일곱 천계로 돼 있으며, 현세에 성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곱 가지 종교적 품행이 요구됐다. 유다인들은 1주일 중에 7일째 되는 날이 안식일이다. 또한 7년째 해에는 밭을 갈지 않고 묵혀 쉬게 했다. 구약성경에서도 노아의 방주에 짐승들이 들어간 7일 후 홍수가 땅을 덮었으며, 노아는 땅에 물이 걷히고 나서도 7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보냈다."그는 이레(7일)를 더 기다리다가 다시 그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 보냈다"(창세 8,10).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1-22). 요한묵시록에는 거의 각 장마다 일곱이라는숫자가 나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성령의 칠은과 7성사 등일곱은 매우 중요한 숫자로 돼 있습니다. 행운의 상징인 7이란 숫자가사람들에겐 위안이 되고 소망을 갖게 하는 것은유구한 관습이 영혼에 배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