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조선시대에 봉기가 일어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농민봉기는 19세기에 세도정치 아래에서 삼정의 문란 발생과 탐관오리의 착취,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농민의 생활이 궁핍해지면서 발생했습니다. 왕실과 혼인 관계를 가진 특정세력(왕실외척세력)이 권력을 독점하는 비정상적인 정치 형태를 세도정치라고 하는데 어린나이 왕이 즉위하자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당연히 세도정치 하에서는 왕권이 약화되어 정치기강 또한 문란해져서 매관매직(관직을 사고 팖) 등과 같은 현상과 더불어서 탐관오리(탐욕스러운 관리)의 착취, 삼정의 문란이 발생하였습니다.삼정은 조선시대의 세금행정체계로써 전정(전세 : 토지에 부과되는 세금), 군정(군포 : 군역징발대신 포-옷감-로 받음), 환곡(봄에 대여한 곡식에 가을에 약간의 이자를 붙여받음)이 있었는데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은 세금을 관리들이 징수하게 되면서 삼정이 문란해졌다. 그래서 농민들이 대거 참여하는 농민봉기가 홍경래의 난을 출발점으로 삼고 진주농민봉기로 전국적으로 농민봉기가 확산 될 수 있었다
Q. 미술작품 보고 궁금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과거에는 물감의 재료를 자연에서 얻기 시작했습니다.식물 광물 등등에서 얻었죠. 아래 내용을 보시면 이해하기 쉬우실 겁니다.우리나라에서 과거에 사용하던 천연 물감은 다음과 같다.적토(赤土) : 우리나라는 여러 지방에서 적토가 나지만, 특히 강원도 양양 지방의 붉은 흙을 주토(朱土)라 하여 적토 대용으로 쓰기도 하였다. 그 밖에 중국에서 수입한 붉은 벽돌을 분말로 하여 적색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② 백토(白土) : 백묵(白墨)이라고도 한다. 강원도 방산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이 유명하여 방산백토(方山白土)라고도 한다.③ 황색 : 등황, 치자(梔子), 송화분(松花粉) 등을 사용하였다. 등황은 중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치자가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치자를 상용하였다. 인도에서는 소 오줌을 걸러 황색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을 인디안 옐로우(indian yellow)라고 부른다. 송화분은 연한 황색이므로 그림이나 글씨에 많이 사용하였다.④ 청색 : 중국에서 코발트 안료를 수입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에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토청(土靑)주 02)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청색을 내던 것 중 남(籃)은 군청색의 하나로 쪽에서 추출하여 사용하였다. 특히 민화(民畵)에서 자주 사용하였고, 꿩의 목 주위 색은 쪽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⑤ 먹〔墨〕 : 검은색을 내는 데 사용되었다. 먹의 역사는 매우 오래 되어서 낙랑시대의 한묘(漢墓)에서 발견된 벼루에 분말이 남아있었고, 작은 가루 상태의 환약형(丸藥形) 먹을 옻칠 또는 아교물에 쪄서 제조한 것이 출토되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물감(물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