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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동연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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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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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짜장면의 역사가 정말 궁금합니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짜장면의 인식 어땠는지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는 1880~1900년대 들어온 중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아예 정착을 해서 개항지였던 인천 등지에서 한국인 입맛에 맞춰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짜장면이었습니다. 특히 이 당시에는 중국인 부두 노동자들도 있었는데 과거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인들이 우리나라에 주둔을 하면서 상인들이나 노동자들도 많이 몰려와서 관련 식당들도 성업을 했었습니다. 특히 중국인 노동자들인 '쿨리'들에게 이들이 일하면서 먹기 편하게 만들어 낸 것이 바로 한국식 짜장면의 시초였습니다 지금은 돈만 있으면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국민 음식들 중 하나긴 하지만 과거에는 1970~1980년대만 해도 가족들이 무슨 일 있으면 큰 마음 먹고 외식을 할 때 먹기도 했던 음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때 1960년대 짜장면의 경우 화교들이 해외를 통해 재료를 수입했기에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는 외화유출에 민감한 상태라서 화교들을 이런 부분에서 집중 단속을 했었습니다.그래서 화교들이 한국식 면장이나 그런 면장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들을 공동출자해서 만들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중국식 면장을 고집하기 보다 한국인들 입맛에 맞는 면장을 만들어서 현재의 짜장면이 된 것입니다.한국사람들의 경우 대개 짜장면을 국민 음식으로 한끼 때우는 것으로 먹고 이게 또한 국내 서민 물가를 가늠할 수 있는 물가지수 품목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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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과거 얼음 보관법을 어떻게 했을까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냉장고가 없던 과거에는 얼음이 매우 귀했습니다. 지금은 언제든지 얼음을 얼리고 꺼내먹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불가능했죠.따라서 당시에는 강물이 두껍게 어는 추운 12월경에 직접 채빙을 한 후,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까지 얼음 창고에 보관했답니다! 이 얼음 창고는 바로 ‘빙고(氷庫)’라고 불리는데요. 빙고는 아주 옛날부터 조선조 말기까지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실생활에 이용되었던 당시의 냉동고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얼음을 채취하여 저장하는 일은 신라시대부터 있었으나 당시에 축조된 빙고는 현재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빙고는 대개 조선시대의 빙고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빙고로는 ‘동빙고’와 ‘서빙고’가 있습니다. 이는 조선 태조 때, 서울의 한강 북쪽 연안에 설치되었던 얼음 창고입니다. 한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한강의 얼음을 깨내고 운반해 이 얼음 창고에 보관한 것이죠! 주로 동빙고에는 나라의 제사에 쓸 얼음 1만여 개, 서빙고에서는 궁중 부엌에서 쓸 얼음과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얼음 13만여 개를 저장했습니다. 당시 빙고(氷庫)라는 직제를 두어 5품관인 제조(提調) 이하의 많은 관원들이 이 빙고를 엄격하게 관리했다고 합니다.얼음이 귀했던 만큼, 서빙고의 얼음 지급 시기와 대상을 법으로 정해두었다고 하는데요!서빙고의 얼음은 매해 여름 벼슬아치와 70세 이상 퇴직자 등에게 배급했습니다. 또한 무료병원인 활인서 환자와 의금부, 전옥서 등의 감옥에 갇혀있는 죄수들에게도 나눠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얼음의 공급은 당시 중요한 국가 행사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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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밤에 오줌을 싸면 소금을 얻어오라는 이유는 뭔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머리에 뒤집어 씌우는건 키라는 도구는시골에서 곡식의 잡티 걸러 낼때 쓰는 도구에요. 오줌싸개에게 키를 씌우는 이유는 다른집에 소금구하러 갔을때 기가 약한 아이가 그집 역신을 몰고 오지 말고 걸러내고 오라는 의미에서 키를 씌웠다고 하네요 소금은 예전부터 역귀, 역신을 몰아내는데 많이 쓰였어요.지금이야 야뇨증 있는 아이들 병원가서 고치면 되지만.....예전에는 아이들이 기가 약해서 오줌을 싼다고 생각을 했어요.기가 약하면 역신이나 역병이 아이에게 달라붙는다고 해서그역신을 쫓아 내려고 소금을 이용했다고 합니다.다른집에서 소금을 얻는 이유 또한 집 밖에서 역신을 털어내고 오라는 의미에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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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나라 민속 줄다리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줄다리기에서 이긴 편의 마을은 그해 논농사가 잘되고 무병·무사한다고 합니다. 이긴 편의 줄을 썰어서 논의 거름으로 쓰면 그해 풍년이 들고, 배에 싣고 다니면 폭풍을 만나지 않아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줄다리기는 대부분 중부 이남 논농사를 주로하는 지역에서 성행하고 있으며, 승부를 떠나 공동체 사이의 협동과 풍요를 기리는 놀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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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동독과 서독이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독일은 제 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연합국에 점령당합니다.연합국의 대표적인 국가로는 영국,프랑스,미국,소련으로 이들은 전쟁기간 독일에 대항한다는 점을 공유하고일시적인 전시 동맹을 맺었습니다.그러나 독일이 패망하고, 소련이 공산주의를 점령지에 퍼뜨리려 하자 미국,영국,프랑스는 소련을 적으로여기고 극심한 대립을 했지요.이 과정에서 소련이 점령한 독일지역은 동독이 되었고, 미.영.프의 점령지는 서독이 되었습니다.독일인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미국,소련등의 이해관계에 맞물려 이루어진 분단입니다.1990년대 들어 이러한 미국vs소련 구도의 냉전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소련의 경제 발전 속도는 크게 늦추어지기 시작했고요, 공산주의 국가에 사는 시민들은 언론과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공산주의 정권에 불만을 가지고 개혁을 요구합니다.이러한 운동이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를 휩쓸었고, 마침내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은 물러나고,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도 해체되고 맙니다. 공산국가였던 동독 또한 이러한 물결을 타고 공산주의 정권은 물러났습니다.동독과 서독은 국민투표를 통해 통일 지지 여부를 물어봤는데요, 전국민의 대부분이 찬성으로 동독과 서독은 통일이 됬고, 베를린은 통일정부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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