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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동연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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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전문가
보가9 그래픽 디자인 및 영상 편집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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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프랑스 종교전쟁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위그노 전쟁의 의의 이 전쟁으로 프랑스 전 국토는 심각하게 파괴되었지만, 그 피해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 왕권 강화와 질서 회복을 이루어 내면서 이후 프랑스가 유럽의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낭트칙령을 통해서 제한적인 종교적 자유를 보장받은 위그노들은 자신들이 종사하던 상공업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어 내어 이 역시 프랑스의 발전에 일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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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야간 통행금지는 언제 생기고 없어졌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시행시기: 1945년 9월 8일폐지시기: 1982년 1월 5일광복 후의 야간통행금지제도는 미군이 진주한 직후인 1945년 9월 8일부터 시작되었으며, 미 제24군 사령관의 ‘일반명령’에 의하여 경성·인천 두 지역에 밤 8시부터 아침 5시까지의 통행금지령을 발포한 것이 처음1945년 9월 29일에는 일반명령을 개정한 야간통행금지령을 발포하여 ‘미국 육군이 점령한 조선지역 내 인민’에게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야간통행금지가 포고1959년 당시는 밤 10시-새벽 4시까지 전국적으로시행1961년 1월1일부터 밤 12시부터 새벽 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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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나라 최초의 카페는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종은 손탁여사가 만든 커피를 무척 좋아하여 다른 음식과 달리 커피만큼은 상궁이 기미를 보지 못하게 하여 자신이 직접 커피를 음미하였다. 고종의 커피사랑은 외국 사절을 접견하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덕수궁 안에 ‘정관헌’을 짓게 했다. 이 건축물은 궁중 내 근대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또한 손탁여사에게는 감사의 뜻으로 덕수궁 건너편에 회색과 붉은 벽돌로 아치형의 창들이 있는 아케이트 모양으로 된 전형적인 러시아식 양옥집을 하사하였다. 여사는 1902년 고종황제의 후원을 받아 서양식 호텔로 개조하여 1층은 일반실과 카페겸 레스토랑, 2층은 VIP실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 호텔이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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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라를 이루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 주권이란 말 그대로 '주인으로서의 권리' 를 의미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국가의 대내적, 대외적 활동에 대한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2. 요즘에는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이 많으므로 국민 개개인이 국가권력을 직접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선거를 통하여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고 그들로 하여금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권력을 행사하도록 하는데, 이를 대의민주주의라고 합니다. ​3. 현재 아프리카 나라라도 국경이 있기 때문에 빈 땅을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만약 빈 땅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임의로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그곳에 국가의 구성원이 국민이 있어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국가 간 국가 승인이 필요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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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구려는 한국 역사 아닌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현재의 영토를 기준으로 역사 범위를 설정하는 것이​바로 중국에서 내세우는 동북공정의 근거입니다.​허나 현재의 영토를 기준으로 과거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과연 옳은 시각일까요?​그렇게 따지면 로마는 이탈리아 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서로 자국의 역사라고 우겨야 할 것이며​비잔틴 제국 역시 동유럽 뿐 아니라 터키도 자국 역사라고 우겨야 할 것입니다.​​고구려 발해가 우리 역사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옛날 중국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삼한'이라고 일컬었습니다.​여기서 말하는 삼한은 마한 진한 변한과는 다른 것으로​당대 인식 속에서는 마한 진한 변한이 각각 고구려 백제 신라가 되었다고 인식했던 것이지요.​이를 보여주듯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 왕족 고현의 무덤에서 확인된 묘지명에는​고현의 출신을 '요동 삼한인'이라고 적고 있습니다.​또한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킨 후​고구려와 백제 유민을 포섭하고 자신들의 업적을 드높이기 위해 '삼한일통'이란 것을 내세웁니다.​여튼, 적어도 당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를 삼한으로 인식했으며​중국의 입장에서도 고구려는 자신들과 같은 문화를 공유하거나 같은 역사가 아닌​백제, 신라와 좀 더 가까운 집단으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그리고 고려시대 편찬된 삼국사기를 통해서도​당시 고려 사람들이 고구려 백제 신라를 자국의 역사로 인식했음이 확인됩니다.​질문자님 말 대로라면 고려시대에도 이미 대부분의 고구려 영토는​다른 북방민족(거란, 여진)의 영토가 되었음에도​그 북방민족들은 고구려를 자신의 역사로 보지 않았고 오히려 고려가 고구려를 자국 역사로 인식했던 것이지요.​고려가 몽고의 침입에서 저항하다가 끝내 항복하였을 때​몽고에서는 '당태종도 항복시키지 못한 나라가 몸소 항복하러 온 것은 하늘의 뜻이다'라며​고구려와 고려를 동일시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무튼, 이때도 이미 고구려를 우리 역사로 인식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고​이것이 조선시대로 이어져 현재 우리의 역사 범위의 바탕이 된 것입니다.​​발해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발해는 조선 중기 이전까지 우리 역사로 보지 않았습니다.​중국 역시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인식하지 않았지요.​조선 중기 이후 유득공이 발해고를 저술하면서​발해 역시 고려와 함께 고구려를 이은 국가라고 보았으며​고려가 발해 유민들을 받아들였음에도 역사를 정리하지 않은 것을 크게 비판하였습니다.​조선시대 꾸준한 역사 연구의 결과​발해를 고구려의 계승국으로 인식하고 '역사 인식의 범위'가 확장되었던 것입니다.​​질문자님 말대로 '현대의 영토 기준'으로 역사 범위를 설정한다는 것은​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옛날부터 내려오는 역사 인식의 범위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 됩니다.​중국의 동북공정, 서남공정, 서북공정 등 여러 '공정'들이​주변국들에게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미국이 현재 북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과거 인디언들의 역사까지 자국의 역사라고 주장한다면​그게 과연 합당한 역사 인식이 될 수 있을까요?​터키의 사례를 봅시다.​터키는 자신들의 뿌리를 훈족에서 찾고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현재 터키가 위치하고 있는 아나톨리아반도는​터키가 자신들의 근거지로 삼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요.​아나톨리아반도에는 최초로 철을 만든 히타이트족도 살았으며​그보다 더 오래 전에는 그리스와 같이 미케네 문명의 범위에 해당하는 지역이었습니다.​터키가 현재 아나톨리아반도를 영유하고 있다고 하여​미케네문명과 히타이트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고​자신들이 세계 최초로 철을 만든 민족이라 홍보한다면​과연 그것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현재 터키는 '땅의 역사'와 '민족의 역사'를 별개로 배우고 있습니다.​땅의 역사는 말 그대로 미케네 문명이나 히타이트, 페르시아 등의 역사를 의미하며​자국의 역사라 주장하지 않고 순수하게 학술적인 의미의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중국 역시 터키의 사례처럼 적용해야 맞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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