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올림픽에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4년에 한번씩 열리는 동계 올림픽부터 하계 올림픽이라고만 인지하고 있는데 올림픽이 대중화가된 역사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최초의 올림픽이 열린 기원전(B.C.) 776년 당시엔 4년마다 열렸던 올림피아의 올림피아경기, 델피의 피티아(Phthia)경기, 2년마다 열렸던 아르골리스의 네미아(Nemia)경기, 코린트의 이스트미아(Isthmia)경기가 그리스의 4대 제전경기였습니다. 아테네 도시국가의 권력가(정치인)이자 시인인 솔론(Solon)이 올림픽 승리자에게 500드라크마(drachmas : 고대 그리스 화폐단위)를 주고, 이스트미아의 승리자에겐 100드라크마를 준 기록은 당시 올림픽이 더 중요했고 번창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대올림픽을 계승한 근대올림픽의 시작과 탄생이 프랑스의 귀족 출신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 남작 한사람에 의해 나온 것으로만 대부분 알고 계십니다. 이러한 믿음은 올림픽이 개최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100년 이상 인식하고 있습니다. 근대올림픽은 바로 고대올림픽의 부활을 뜻합니다. 그런데 왜 ‘올림픽’일까? 이는 올림픽 발상지인 고대 그리스에 이것 말고도 다른 운동축제들이 있었으며, 이 중 올림픽이 채택돼 근대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또한,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올림픽이 열리기 전 그리스 아테네에서 비록 국내대회이지만 올림픽이 3차례 열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영국에서도 역시 국내대회로 올림픽이 한 차례 열리기도 하였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출범된 뒤에도 1904년 세인트루이스올림픽과 1908년 런던올림픽 사이인 1906년 아테네에서 올림픽이 열렸다는 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입니다. 근대올림픽은 이렇듯 공식적인 출범 이전과 이후에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습니다.
Q. 농구에 역사가 궁금해요. 지금은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았지만 어느나라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대중화가 되었는지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농구는 1891년에 미국의 메사추세츠 스프링필드라는 곳에서 고안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국제 YMCA 트레이닝스쿨(현 스프링필드 칼리지)의 체육교사 였던 J. 네이미스라는 사람이 고안을 했다고 합니다. 스프링필드의 YMCA에서는 체육 시간에 주로 옥외에서 미식축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프링필드라는 곳은 겨울에는 눈이 많아 눈 때문에 운동장을 사용할 수 없어서 마땅히 할 만한 스포츠 프로그램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저 실내에서 하는 행진 연습이나 독일식 또는 스웨덴식의 딱딱한 맨손 체조 등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젊은이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런걸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학생들의 소리 없는 불평을 젊은 체육교사 네이 스미스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네이 스미스는 실내에서도 축구나 미식축구처럼 재미도 있고 운동상의 효과도 얻을 수 있는 스포츠가 없을까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운동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지금까지 운동장에서 하던 미식축구를 실내에서 그대로 하여 학생들의 불만을 덜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리저리 튀어 나가는 공 때문에 체육관의 유리창이 깨지고 벽이 망가지는 등 건물이 완전히 부서지고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습니다. 네이 스미스는 지금의 스포츠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스포츠를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너무 과격한 스포츠는 실내에서 하기에 적당하지 않고 배트, 라켓, 스틱 등의 기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스포츠를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을 사용하더 라도 큰 것이라야 하고, 거친 태클을 없애기 위해선 공을 가지고 달려서도 않되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면을 고려하면서 "골대를 높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골대를 높게 하면 슛하는 방법에 제약이 있으므로, 공을 힘으로 다루기보다는 정확하고 컨트롤에 역점을 두게 마련 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머릿속에 이런 구성을 생각한 네이스미스는 계속적인 개정, 보완 작업을 거쳐 새로운 스포츠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규칙13 항목을 적어 YMCA체육관의 게시판에 붙였습니다. 자신이 구상한 새로운 스포츠의 시험 경기를 앞두고 네이 스미스는 학생들에게 "이번 시도에서도 실패하면 더 이상 새로운 것을 개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나.... 이 "시험"은 대성공이었습니다. 1891년 12월 중순에 거행된 "사상 최초의 농구 경기"는 인원수에 제한이 없었습니다. 당시 학생수였던 18명을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에9명이 플레이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초창기에는 지금처럼 잘 튀기는 농구공이 없었기에 축구공을 대신 농구공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골대로 복숭아 바구니(Peach Basket)를 체육관의 양쪽 발코니에 10피트(305센티미터) 높이로 잡아매어 사용하였습니다. 이것(복숭아 바구니를 사용한 것) 때문에 바스켓볼 (Basketball)이라고 이름이 붙여져 지금까지 불리우고 있습니다. 동양의 일부 국가에서는 '상자'라는 뜻의 농(籠)자를 써서 "농구(籠球)"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우리나라 같은 곳입니다) 그리고 그때엔 그물을 안썼는지 슛이 들어갔을 때마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볼을 바구니에서 꺼내서 다시 농구 경기를 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 후 농구의 인기는 점점 커져가서 미국에서 대유행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8년 후인 1899년에 프로농구 리그가 생겼다고 합니다. 여기서 YMCA는 농구 보급에서 큰 역할을 차지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크리스마스가 되어. 학생들은 휴가를 보내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자기 고향에 가서 학교에서 네이스미스에게 배운, 아직 이름도 없고 규칙도 제대로 기억할 수 없는 이 새로운 스포츠를 YMCA를 통해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탄생된 농구경기는 한 국가의 경기수준이 아닌 세계적인 구기경기로 인정되면서 1932년 제 10회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때 국제 농구연맹 (FIBA)이 창설되었다고 합니다. FIBA는 농구경기를 통할하면서 통일된 규칙을 제정하였고 그 후 올림픽에는 1936년 제 11회 베를린 대회 때 처음으로 남자농구 종목만이 올림픽에서 팀 게임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부터 40년 후인 1976년 제 21회 몬트리올 올림픽 대회부터는 여자농구 종목도 올림픽 경기로 채택되어 현재까지 실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1952년 헬싱키 올림픽, 1956년 멜버른 올림픽,1960년 로마올림픽, 1964년 동경 올림픽,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때까지는 미국이 본고장 답게 연속으로 우승을 하여 독무대를 이루었으나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때부터 출전하여 결승에서 미국에게 계속 져서 2위만을 차지 했던 소련이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미국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한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1976년 캐나다의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다시 세계 정상을 차지하면서 농구의 본고장 답게 세계 최강을 과시했다고 합니다.
Q. 커피가 대중화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커피를 뜨거운 음료로 마시기 시작한 최초의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아랍인들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11세기 즈음에 카베 카네스(kahve kanes), 혹은 커피하우스가 모카 지방의 예메니 항구에 번성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커피를 아랍 세계의 것으로 여기는 이유는 커피의 재배가 오랫동안 아랍 세계 내에서만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커피 [Coffee] (1%를 위한 상식백과, 2014. 11. 15., 베탄 패트릭, 존 톰슨, 이루리)1475년 콘스탄티노플에 등장한 커피숍은 유라시아 대륙에 들어선 최초의 커피숍이었다.그리고 당시 무역의 중심지였던 베니스는 유럽에서 커피를 가장 처음으로 받아들인 도시가 되었다. 독일, 프랑스, 영국으로 전파된 커피는 다시 대서양을 건너 브라질로 밀수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밀수된 커피로 인해 오늘날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