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우리나라양궁 역사는 언제부터 잘하게 된걸까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본격적인 투자에 힘입어 대한민국 양궁이 세계적으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양궁은 당시 잘 나가던 다른 종목과 비교하여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정부는 성적이 좋은 종목에만 대표팀이 참가하도록 했는데, 그 때문에 초기 양궁 선수들은 대표팀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석봉근 선생의 아들이자, 당시의 에이스였던 석동은 감독만 해도 선수 시절에는 올림픽에 참가한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다 70년대 후반 이런 노력의 첫 결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니, 난세의 영웅 김진호가 세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전성시대가 개막했다고 평가 받습니다. 1978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 싹쓸이로 시작하여 1979년 세계 선수권까지 4관왕을 달성하여 신궁 계보의 시작점을 고하기도 했습니다. 현대가의 투자가 시작된 1988 서울 올림픽에선 4개의 세부 종목 중 금 3, 은 2, 동 1을 수확해내는 괴력을 선보이면서 올림픽 효자 종목으로 비로소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Q. 우리나라에 전통 씨름에 역사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 전통 씨름의 역사가 궁금한 것 같습니다. 그 기원은 약 2,000년 전 고구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고대 부족사회 때부터 성행된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 투기로, 기원전 2333년 단군조선시대 이후 '치우희', '각저희', '씰흠' 등의 명칭으로 씨름을 기록한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또 약 4세기경 고구려 고분 각저총 주실의 벽화에도 씨름하는 장면이 나타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점차 마을과 마을의 대항전이나 풍년을 기원하는 숙원행사, 단오절 씨름놀이 등 연례적인 대규모 축제의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