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조선시대 사람들은 더울때 어떻게 했나요?
조선시대 사람들은 더위를 다양한 방법으로 이겨냈습니다. 우선 대나무로 만든 죽부인, 등거리, 왕골 방석 등 통풍이 잘 되는 소품을 사용하여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선풍기 대신에 부채질로 더위를 식히고, 계곡이나 연못, 강가에서 발을 담그는 것도 좋은 피서입니다. 그리고 왕이나 양반들은 얼음물에 담근 수박, 참외, 체호탕 등 시원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실제로 한성에는 석빙고가 있어 얼음을 보관하고 있다가 꺼내 먹기도 했습니다.
Q.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가르치는 역사왜곡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까요?
일본에서 독도를 자신의 영토라고 왜곡하여 교육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우리나라가 직접적으로 대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국제 사회에 적극적으로 홍봉하여 국제 기구, 외신, 해외 학계 등을 통해 독도가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대한민국 영토임을 적극적으로 알려 일본의 왜곡 주장을 꾸준히 지적해야 합니다.그 외에도 정부, 시민 단체, 국제 연대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독도의 영유권에 대해 홍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Q. 사도세자의 비극은 조선왕실의 시스템 충돌?
사도세자의 죽음을 법과 예를 중시한 영조와 감정을 표현한 사도세자의 성격 충돌로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일어난 사건입니다. 영조는 왕권과 유교적 질서, 법과 예를 엄격하게 지키려 하였으나 세자는 군주의 품격과 절제가 부족하다고 영조는 판단한 것입니다. 게다가 사도세자의 감정 기복으로 인한 정신적 불안과 일탈 행동이 영조에게 확신을 주엇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노론과 소론의 정치적 대립이 영조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영조와 노론은 경종의 사망과 관련하여 소론의 공세에 처했으며, 세자의 친 소론적인 행보는 영조와 노론에게 위협적이었습니다. 즉, 영조의 법과 예, 사도의 감정 표현이라는 두 세계의 충돌은 사실이지만, 그 배경에는 정치적 모함, 권력구조, 가족 내 상처 등이 깊이 작용한 조선 왕실 최대의 비극이었습니다.
Q. 태극기 게양법에 대해서 다들 알고 있으신가요?!
3.1절 광복절 등 국경일, 경축일에는 깃봉과 깃면 사이를 떼지 않고 깃대의 가장 윗부분에 단단히 게양합니다. 조의를 표하는 현충이르 국민, 국장 때는 깃면의 너비만큼 깃봉에서 내려 조기를 게양합니다. 완전한 조기가 어려울 때는 바닥에 닿지 않도록 최대한 내려 답니다. 일반적으로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게양하며, 공공 기관은 24시간 게양합니다. 단독주택은 대문의 중앙이나 왼쪽, 아파는 베란다의 중앙 또는 왼쪽, 차량은 전면에서 보아 왼쪽에 게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