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4.19 혁명이 일어난 배경과 그 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발단은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대통령 및 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였던 이기붕 부통령 후보의 당선을 위해 자유당이 조직적인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이었습니다. 이에 반발한 학생들과 시민들은 전국적으로 시위를 벌이게 되었고, 이를 경찰과 군대가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4월 11일에는 1차 마산 시위에서 실종되었던 고등학생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로 발견되어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되었으며, 4월 18일에는 고려대생 3천여 명이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다음날인 4월 19일에는 서울 시내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이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혁명적인 분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Q. 왕비가 왕대비가 아닌 경우 왕비의 어머니가 살아있는 경우에는 어떤 호칭?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비의 어머니가 살아있을 경우, 왕비는 어머니를 대비(大妃) 또는 자전(慈殿)이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왕비의 어머니는 신하들로부터 경칭을 받아 왕대비, 대왕대비와 같은 칭호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 초기에는 왕비의 친어머니에게만 대비라는 칭호를 붙였고, 이후에는 모든 왕의 어머니를 대상으로 왕대비, 대왕대비 등의 칭호를 붙이는 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Q. 기계식 시계가 나오기 전엔 어떤 방식으로 개인들은 시간을 알 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주로 자연물을 이용하여 시간을 파악했습니다. 해시계는 태양의 움직임을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로, 기원전 4세기경부터 이집트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물시계는 물이 떨어지는 속도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모래시계는 모래가 떨어지는 속도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로, 중세 유럽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촛불시계는 촛불이 타는 속도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로, 중세 유럽에서 사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