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우리나라 기독교는 일본보다 늦게 들어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잘 정착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에는 유교가 국가의 공식적인 종교로 지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종교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서양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와 교육, 의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조선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화와 지식을 전달하고, 기독교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Q. 고인돌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인가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인돌은 한국의 선사시대 문화유산 중 하나로, 거석문화를 대표하는 석제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고인돌은 주로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고인돌은 농업과 정주 생활이 시작된 청동기 시대 전기부터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특히 한반도의 고인돌은 규모가 크고 구조도 다양하며, 약 4만여 기가 분포하고 있는데 이는 전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에 해당합니다. 이는 당시 한국인들의 장례 문화와 사회 구조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 국내외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문화유산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고인돌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Q. 김옥균의 묘소가 왜 일본땅에 있는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옥균의 묘소는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위치한 김옥균 선생 유허에 있습니다. 원래 김옥균의 묘소는 일본 동경 아오야마 외인묘지에 있었으나, 1914년 9월 11일에 아산으로 이장되었습니다. 김옥균은 조선 후기의 정치가이자 개화운동가로,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한 후 일본으로 망명하였습니다. 이후 1894년 다시 상하이로 망명하였으나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당하였고, 시체는 본국으로 돌아와 양화진에서 능지처참되었습니다. 김옥균 선생의 묘소 오른쪽에는 사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매년 김옥균의 추모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Q. 일본에서 천황 제도가 오랫동안 유지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의 천황제도는 고대부터 존재하던 신성한 제도로서 여겨져 왔으며, 이러한 인식이 일본인들의 집단적인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또 일본의 독특한 정치 체제인 막부체제와의 상호작용도 천황 제도가 지속되는데 영향을 미쳤습니다.막부체제에서는 쇼군이 실권을 장악했지만, 천황은 여전히 종교적,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쇼군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천황과의 관계를 중시했으며, 이로 인해 천황 제도가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