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해방 이후 우리나라 좌익 계열 정당 양상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원하시는 대답일것 같은 칼럼 하나를 보엳려요여주시사 - 현대의 정치경제: 광복 직후의 정당과 정치조직해방정국은 한국정치의 혼란기였으며 동시에 정치에 대한 기대와 참여의 폭발을 가져왔다. 해방 후 두 달도 되지 않아 미군정청에 등록된 정당의 수가 54개에 이르렀고, 그후 1년 이내에 정당 수가 300여 개로 증가하였을 정도이다. 정당들은 좌우 양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되는 이념적 성향과 계급적 기반을 바탕으로 매우 치열한 정치투쟁을 전개하였다.해방공간에서 좌우의 양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은 공산당(후에 남로당)과 한국민주당(약칭 민주당)이었으나, 이런 상황에서 여운형이 이끄는 중도좌파의 조선인민당(후에 근로인민당)과 김구 등 상해 임시정부 계열의 한독당과 같은 중도우파 정당도 있었다.해방공간에서 좌파세력은 가장 빠르게 조직적 대응을 보였다. 여운형은 일제의 무조건 항복으로 힘의 진공상태를 이루게 된 한국의 과도적 치안권을 조선총독으로부터 물려받아 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결성(1945. 8. 10)하고, 이어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1945. 9. 6)하는 한편, 각 지방인민위원회를 구성하고, 노동자·농민·청년·여성 각 부문별 대중조직에 나섰다.이와 같은 좌파세력의 대두에 자극을 받은 보수우파진영은 1945년 9월에 그 대항조직으로 한국민주당을 결성하였다. 이는 임시정부 환국준비위원회의 송진우·김성수 그룹, 조선민족당의 김병로·조병옥 그룹, 한국국민당의 백남훈·김도연·윤보선·허정 그룹 등이 대거 참여한 이른바 우파민족진영의 결합체였다. 그러나 한민당은 건준에 대항하는 세력이면 가리지 않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친일적 세력도 대거 참여했다. 한민당의 사회적 기반은 호남 등의 대지주 및 자본가 계급으로서 현상유지라는 계급적 이해를 가진 국내파 세력이었다.한편 좌파세력은 볼셰비키적 전투적 전위정당으로 자처하는 박헌영 일파의 공산당과 비공산주의적 사회주의 세력을 주도하는 여운형의 조선인민당으로 나뉘어 있었다. 양자는 강령, 정책, 조직원칙, 투쟁방식, 전략전술 등에 있어 차이가 있었으나, 여운형은 주요 정책노선에서 공산당에 동조, 제휴하거나 그에 이용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헌영이 군소 좌파세력을 흡수하여 남로당을 결성(1946. 11. 23)하자, 여운형은 사회주의 온건파 중심으로 근로인민당(1947. 5. 24)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창당 2개월이 못 되어 여운형이 피살됨에 따라 당은 급속히 약화되었다.한민당은 상해임시정부를 봉쇄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민중의 호감을 유도하면서 미군정에 적극 협력하여 여당의 지위를 확보하고 착실히 세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어 좌우합작이 어려워지자, 김구와 김규식 중심의 임정세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이승만의 단독정부 노선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독립촉성회와 더불어 대한민국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였다.한편 해방 직후 정당이 난립했을 당시 여주군내에 정당이 몇 개나 있었는지 확실히 알 길이 없다. 그러나 1948년에 있었던 제헌국회의원선거에는 입후보자의 소속에 대한독립청년단(구종일, 사퇴)과 대동청년단(원용한, 당선)이 등장했다. 이 선거에는 전국적으로 48개의 정당·사회단체가 대표되었다. 대동청년단은 네 번째로 많은 후보(87명)를 낸 정당이었으나 대한독립청년단은 전국에서 3명의 후보밖에 내지 못했다.
Q. 우리나라의 출산율 역사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합계출산율은 인구의 연령구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출산력 지표로 연령구조가 상이한 국가나 집단 간의 출산수준 비교에 널리 사용된다. 합계출산율은 모아비, 일반출산율, 재생산율 등과 같은 출산력 지표에 비해 그 의미 파악과 해석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장점을 지닌다.합계출산율은 1970년 4.53에서 급격하게 감소하여 1983년에는 대체수준(2.10) 아래인 2.06으로 떨어졌다. 2000년대 들어 저출산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합계출산율은 2000년 1.48, 2010년 1.23, 2022년 0.78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00년대 진입 이후 홍콩과 마카오 등을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합계출산율의 감소 추세는 한국 인구에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다. 최근 유럽 동부지역과 지중해연안 그리고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합계출산율의 급격한 감소 추세가 관찰된다
Q. 고려시대 청연각과 보문각은 무슨일을 하는곳인가요?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청연각문신들과 더불어 6경(六經)을 강론하고 문예와 예악으로써 유학을 진흥시키기 위하여 설치된 일종의 궁중 도서관이다. 위치는 궁궐 북쪽에 위치한 자화전(慈和殿)의 서쪽이었다.소장 도서는 경(經)을 중심한 사(史)·자(子)·집(集) 등으로서 송(宋)나라의 서화류도 소장되어 있었다. 관원으로는 학사(學士 : 종3품) 1인, 직학사(直學士 : 종4품) 1인, 직각(直閣 : 종6품) 1인, 교감(校勘) 4인이었다.청연각(淸讌閣)이 궐내에 있어 학사들의 직숙(直宿)에 어려움을 겪자, 1116년(예종 11) 홍루(紅樓) 아래에 있는 남랑(南廊)을 수리해 학사들이 회강(會講)하는 당으로 만들었다. 이를 정의당(精義堂)이라 한 뒤, 그 좌우를 휴식처로 삼고 보문각으로 이름을 고쳤다. ‘보문(寶文)’이란 송나라 제도로서, 예종의 숭유(崇儒)와 모화(慕華)주1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위치는 궁궐 북쪽 청연전(淸讌殿)의 남쪽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