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제사나 상가집등에서 주로 검정색 옷을 입는데..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상조복장은 대부분 검은색으로 통일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유는 문상하는 마음가짐을 드러내는 것이겠죠.조선시대 우리나라에 검은 색 옷감이 없었을 테니, 검은색이 아니라 흰색이나 삼베 색깔의 옷을 입었죠.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검은 계통의 색 옷이 단정함을 나타내기때문에 검은 색 옷을 입기 시작했을 것입니다.그래서 외투와 모자, 양말까지 신경이 쓰이는 데요.아무래도 화려한 색이나 알록달록한 무늬는 단정함을 표현하기는 어려우니 조심스럽겠죠.요즘 상가에 문상을 갈 때, 특별히 검은색 양복이나, 넥타이, 검은 양말을 챙기지 않은 경우도 종종 보이는데요.이는 현대인의 자유로운 사고방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특히 검은색은 상조회사의 입장에서 가장 편리한데요.과거 상복을 모두 장지에서 불태우던 관습과는 달리, 상주들도 입었던 옷을 상조회사에 반납하고, 상조회사는 세탁해 재활용하죠.흰색을 세탁하는 것보다는 검은색을 세탁하는 것이 편리하기때문에 상조회사들은 검은색 상주복을 대여하는 것 같습니다.맏상주가 누군지 확인할 수 있도록 완장에 2줄을, 맏상주가 아니면 1줄의 완장을 차도록 하기도 하는데, 문상 온 사람들이 상주를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든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일본 문화라고 하는 말도 있네요.일본 문화라고 하기에는 세계 각국의 장례식을 보면, 검은색 복장을 하고 있으니, 굳이 일본문화라고 하기엔 좀 그렇죠?만약 일본문화를 배척하고, 우리 전통문화를 살리려면, 흰색계통의 옷을 입을 수는 있겠지만,조금만 생각해 보면, 불태워 없애는 것도 무리가 있고, 흰색계통의 옷을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상주나 문상을 하는 사람이나 단정하게 고인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한 검은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낫겠죠.
Q. 방송을 보면서 느끼는 궁금증인데?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유투브 크리에이터나 경제 전문가라고 하시는 애널리스트들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죠.그분들도 틀립니다.왜냐하면, 경제는 유기체처럼 움직이기때문에, 환경과 상황에 빠르게 반응합니다.이 모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고요.단지 과거의 경제의 흐름을 분석하면, 현재가 보이고, 미래도 예측이 가능하죠.그런데 그 예측이라는 것이 동물이 항상 다니는 길목이 있듯이, 경제도 패턴이 있습니다.이런 패턴을 미시경제, 거시경제를 분석하는 틀안에서 예측하는 것 뿐이죠.경기 흐름을 파악하도록, 경기선행지수를 주식거래시장에서나 환율시장에서 제공하고 있는데,이런 선행지수가 어느 정도는 예측을 도와줍니다.경기선행지수를 구성하는 지표로는 기계류내수출하지수, 건설수주액, 구인구직비율, 재고지표, 수출입물가비율, 주식시장흐름, 국제원자재가격지수, 소비자기대지수, 장단기 금리차 같은 지표들을 미리 예측해서 지수로 보여줍니다.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이나, 우크라이나전쟁도 예측하는 사람이 있을까요?이런 것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이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경제적 활동은 현재 변동 지수가 6개월이나 12개월 후에 결과로 나타나기때문에, 이런 지표들을 평소에 계속 분석하고 있다면,어느 정도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는 예측을 할 수 있게 됩니다.그러나 질문자님이 보시기에는 아주 정확해 보여도, 애널리스트들은 항상 언저리를 말하지, 정확한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두리뭉실하게 말하죠.경기선행지수나 경기 패턴이 정확할 수는 없습니다.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기때문에, 예측이지, 예언은 아니죠^^그리고 펀드같은 것을 조성해 투자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이렇게 경기선행지수를 읽는 것이 그의 직업이므로,전문가의 안목을 갖게 되는 것이죠.
Q. 조선시대 한글이 양반사회에 정착된 시기는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하셨기때문에, 대놓고 한글을 비하 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문종도 연산군도 한글에 대한 정리를 한 기록이 있고,연산군은 왕궁에 있던 궁녀가 한글로 보낸 편지때문에, 심문을 했다는 기록도 있고,숙종은 훈민정음 후서를 썼다고 하는 데, 어떤 책인지는 전해지지 않습니다.숙종 때 남구만이, "요새 식년시에 구송만 시키니까 시골 애들은 아예 언문으로 공부해서 한문으로 서찰도 못 쓰는 것들이 과거급제자라고 들어오는 데 이러니까 삼사에서는 쓸 사람이 없어 허덕이죠."라고 말했다네요.초기부터 양반들도 한글을 한자 음표기에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양반이 여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한글을 사용한 것 같기도 합니다.한글이 창제된 후 곧바로 양반들도 한글을 기록에 사용했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한글이 양반들 사이에서 천대를 받았는 지의 문제는 세종의 후손이 계속 왕을 이어간 조선에서 양반이 대놓고 선대의 조상이 창제한 한글을 천대하는 발언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양반들 사이에 한글이 정착이 되지 않았다고 전제하는 것은 어떤 근거로 하시는 생각일까요?숙종 때 남구만의 한탄스러운 언급을 보아, 조선의 과거제를 한글로만 치렀다는 기록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겠죠. 연산군도 한문 책을 한글로 번역하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고, 숙종은 직접 한글로 책을 썼다고 하는 것 같은데, 이런 기록을 무시하고 한글은 양반들에게 천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걸 바꿀 필요가 있겠죠.언문이라는 말도 세종대왕이 직접 언문청을 두라고 하셨기에, 이 언문이라는 말을 언제부터 한글을 비하하는 단어로 인식했는 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시대 양반의 기록에서 언문을 비하하는 문장이 없기때문이죠. 한글을 비하하는 것은 선대 세종대왕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을 테니까요.암클도 있는데, 여자들의 글이라고 암클이라 한 것 같습니다.이 단어를 한글비하, 여성비하로 생각할 수 있겠는데,오히려 양반사회에서 여성이 한문보다 한글을 더 사용했다고 볼 수도 있겠죠.중글이라하여 중(스님)이 쓰는 글,상말글은 상스러운 말을 적는 글이나, 상놈들이나 적는 글이라는 표현이 될 수도 있겠죠.반절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한자가 두 글자를 합하여 만든 단어라는 의미였기에,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만난다고 반절이라 불렀네요.이런 훈민정음 또는 한글에 붙여진 이름들을 한글을 비하하는 뜻으로 해석해야하는 지, 아니면 한글의 쓰임새를 표현한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보시죠.그리고 양반사회에 정착된 시기는 창제되고부터 바로 양반들도 사용한 것 같고요. 왕실도 한글로 편지를 썼다고 하네요.그렇다면, 훈민정음으로 창제되자 마자, 전국 방방곡곡 한글이 사용되었다고 하는 것이 한글의 우수성을 잘 표현하는 것 아닐까요?창제되자 마자, 한글이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말을 쓰는 사람은 한글 문자를 배우기가 아주 쉬웠다는 것을 보여주죠.훈민정음, 한글이 천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한글은 한자의 보조 문자 역할을 했다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조선 왕실의 공식적인 문서는 한자로 기록되었고, 개인간 편지같은 것만 한글을 사용했으니까요.
Q. 스님은 왜 고기를 드시지 않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스님이 고기를 드시지 않는다는 표현보다는 살생을 하지 마라는 계율을 따르는 것이겠지요.이렇게 해석한다면, 스님이 직접 살생을 하시는 것이 금지된 것이며,살생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도 계율을 어기는 것이므로,직접 잡은 고기나, 살생하는 것을 본 고기를 먹는 것은 피하는 것으로 보입니다.그러나 직접 잡은 고기나 살생하는 것을 본 고기가 아니더라도, 고기를 먹는 것을 즐긴다면, 이는 스님의 정진에 도움이 되지 않겠지요.스님이 고기를 먹는 것이 계율을 어기는 것이 아니지만,스님이 고기를 드시지 않으시려는 것에 대하여 굳이 비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드셔도 되지만, 드시지 않는 것이겠지요.
Q.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 이유와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문학의 위기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불신이 쌓였기때문일 것입니다.2차대전 이후, 인류는 멸종위기를 느낍니다.유럽은 물론 아시아에서 인간을 생물학실험대상으로 사용했고,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삼켜버릴 것만 같았습니다.그런데 이 전쟁을 시작하게 된 원인이 인간의 합리성과 집단지성으로 나치즘과 일본군국주의에 동조한 때문이었죠.UN이 창설되고, 인류가 평화를 사랑하는 듯 보였으나, 전쟁은 곳곳에서 일어났고,그 원인은 여전히 제국의 대자본의 이익을 위한 소모전 양상이었습니다.우리나라에서는 이명박 전대통령이 대학에서 인문학 지원을 축소하고, 기계공학 지원을 대폭 늘렸고,지금도 이 원칙은 유지되고 있습니다.개인의 삶에서도 더 이상 철학이니, 역사니 하는 것들보다 개인의 삶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경제적 문제와 소확행같은 화두가 미디어를 장악했죠.그러나 그 폐해는 곧바로 드러났고, 개인의 삶은 소외되었고, 신경정신과 질환이 급증했습니다.인문학의 위기라고 불리던 시대는 지나간 것 같고, 지금은 인문학을 그리워하는 시대로 변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인문학이라는 화두가 이미 많이 대두되었고, 인문학강의가 많이 제공되는 것 같습니다.대책이랄 게 없이, 흐름, 대세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죠.인문학의 부재가 힘들어 다시 인문학에 기대고, 이제는 집단지성이나 이성에 대한 맹신이 아니라, 더 진전된 인문학의 장이 열린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