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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에녹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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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에녹 전문가
경상대학교 교육대학 국어교육전공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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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시대 1등 신랑, 신붓감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안녕하세요. 박에녹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에는 혼례에 많은 제약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반상제도라고 하여 양반과 양인으로 나뉘어지는 신분제도가 혼례에도 적용되어 거의 같은 신분들끼리만 혼례를 올리게 되어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중기 후기로 가면 갈 수록 신분제가 구체화 되면서 양반 중인 평민(농민) 천민 등으로 신분이 나뉘어지면서 더욱 신분을 넘어선 혼례는 어려웠습니다. 조선후기에 몰락양반이 나타나고 상인계층의 부를 쌓으면서 신분제의 변동이 조금씩 일어났지만 혼례의 방식을 바꿀만한 변화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1등 신랑과 신부는 각 신분내에서 결정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양반들은 지배계급으로서 왕실과의 혼례를 가장 영광으로 여겼을 것이며 유력한 가문들끼리의 정략결혼도 일반화 되어 있었습니다. 중인이하 평민계층에서는 신분상승의 방법이 제한되어 있었으므로 경제적 안정이 가장 중요한 결혼 상대를 결정하는 기준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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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광해군때 편찬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박에녹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동국신속삼강행실도는 조선시대에 유교이념을 보급하고 이 책을 통해 백성들을 교화시킬 목적으로 편찬되었습니다. 광해군 이전 세종대에 집현전에서 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고 언해본(한글번역본)이 성종대에 만들어졌습니다. 중종대에는 속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가 편찬되었습니다. 광해군 대의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의 특징은 동국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충신, 열녀, 효자들의 사례만으로 내용을 구성하였습니다. 신속은 앞에서 언급된 삼강행실도와 속삼강행실도의 구조를 이어받고 새롭게 구성하였다는 의미입니다. 보통 삼강행실도는 백성들에게 유교이념을 전달하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자본, 언해본 뿐만아니라 책의 사례를 그림으로도 표현했습니다. 이는 한자는 물론 한글도 모르던 평민, 농민들인 백성들에게 책의 뜻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광해군 대의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는 임진왜란으로 인한 왕권의 약화와 왕실에 대한 백성들의 불신을 해결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을 몸소 겪고 분조를 이끌었던 광해군은 이러한 조선왕실의 권위약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고 왕권강화를 위한 여러 정책들을 펼치게 되었는데 그 연장선에서 동국신속삼강행실도가 편찬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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