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인조의 삼전도의 굴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요?
안녕하세요. 김희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네 그렇습니다. 당시 조선의 국력이 많이 약해져 청이 요구하는대로 청과 조선이 군신의 관계를 맺는 것이 최선이었으리라고 판단했을겁니다. 실제로도, 왕이 수도를 버리고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갈 정도로 조선의 힘은 약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가 쇠해지면서 명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소용 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빈면 명의 쇠퇴를 틈타 세력을 키운 청의 국력은 아주 강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말씀하신 삼전도의 굴욕은 생각보다 손꼽을 정도로 굴욕적인 사건이 아니었으리라는 가능성이 최근 대두되고 있습니다.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례를 미디어에서는 땅에 머리를 쾅쾅 박이서 이마에 피가 철철 흐르는 모습으로 묘사하지만, 사실은 명나라 때부터 있었던 관습으로 명나라 황제에게 인사하는 예절입니다. 실제로 머리를 땅에 박지도, 피가 흐르지도 않는 그냥 조금 긴 인사일 뿐인겁니다. 실제로 인조실록에도 이 삼전도에서 삼궤구고구례 의식을 행했던 것에 대해 상당히 무미건조하게 쓰고 있고 딱히 이마 쾅쾅 피 철철 이런 묘사릉 하고 있지더 않습니다. 정리하자면, 조선이 청에게 결국 머리를 조아리고 군신의 관계를 수락한 것은 명을 따르고 명의 은혜를 갚자고 생각했던 조선사람들 입장에선 정말 치욕스런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청에게 조아리는 대신 맞서 싸웠다한들, 청에게 대항할 수 있었으리라거나 동아시아 패권을 조선이 장악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삼전도의 굴욕을 맞은 것은 최선의 선택들 중 하나였을 겁니다. 그럼에도 기억할 점은, 삼전도의 굴욕이라 불리는 삼고구고두례의 예절이 이마 쾅쾅 피 철철 그 정도가 아니고 단순히 입조할 때의 인사 예절 정도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사실 현대적 관점에선 생각한만큼 치욕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