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중국에 있는 고구려 발해 역사 유물은 뭐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현재 중국 영토 내에 고구려의 영토가 겹쳐져 있기 때문에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에 의해서 고구려 역사 유물이나 유적을 확인하는 것은 꽤 오래 전 부터 금지되고, 숨겨져 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고구려의 역사유물에 대해서 정리하여 왔고 최근에는 고분군 246기, 개별고분 269기, 성곽, 유구, 유적, 유물 등을 정리하여 총 971건의 내용을 정리한 중국내의 고구려 역사 유적, 유물에 대하여 발간하여 확인이 가능합니다.
Q. 국제 사회에서 고구려는 어느 나라의 일부로 인식되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사실 중국이 고구려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는 것은 과거에는 전혀 없던 생각이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민족주의 등의 영향으로 자국의 역사를 확립, 확대하면서 현재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토에 대한 권리 등을 생각하며 고구려의 역사 또한 자신들의 영토에 있었으니 중국의 역사로 만들려 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는 잘 알려진대로 중국만의 주장에 가까우며, 남한 뿐만 아니라 북한 또한 이러한 정치적인 역사왜곡에 대항하고 있으며 북한 내에는 과거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정당성이 이어져 있고, 중국의 논리라면 부여 계통인 고구려, 백제가 모두 자신들의 역사라고 해야하는데 단지 고구려만 자신들의 역사로 우기는 것은 영토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죠. 근데 고구려의 수도가 북한에 있다라면 또다른 오류가 발생하죠.
Q. 병자호란 이후, 소현세자 아들 대신에 봉림대군이 왜 왕이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역사를 공부한 분들이라면 소현세자의 독살설 등은 참 많이 들어본 이야기라 생각되는데요. 소현세자가 독살설에 휩싸인 이유가 바로 아버지 인조에게 굴욕을 주었던 청나라와 친하며, 서양의 문물을 적극 도입하려 하였다는 것이죠. 당시 조선의 경우 친명배금을 기본으로 명나라를 부모로 섬기며 따랐던 상황에서 청나라에 굴욕을 당한 상황에 세자라는 국가의 서열 2인자가 청나라와 친해보이니 얼마나 미워보였을까요. 그러나 반대로 봉림대군은 형과는 다르게 신중하고, 오히려 반청사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인조의 입장에서 소현세자 보다는 봉림대군이 자신을 이해해주고, 생각의 방향이 같으리라 생각한 것이죠. 결국 소현세자의 3아들 중 1명이 아닌 봉림대군을 청에서 불러들여 세자에 책봉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