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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큼성큼걷는펭귄836
성큼성큼걷는펭귄83623.01.20

민손놀이 연날리기는 전쟁도구 였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설날에 행하는 민속놀이 중에 연날리기를 가장 좋아하는데

연날리기는 과거에 전쟁에서 사용되었다고 하던데 어떤형식이었는지 또 언제부터 우리 역사에 등장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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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연날리기는 전쟁보다는 민속놀이에 더 가깝다고 합니다.

    다만, 연의 특성을 활용하여 신호의 용도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려 시대

    고려 말기의 명장 최영이 탐라국(제주도)에 살던 목호의 반란을 잠재울 때에도 연을 사용했다는 전설이 있다. 병사를 연에 매달아 절벽에 착륙시켰다고도 하고, 불덩이를 매단 연을 자자성 안으로 날려 보내 성을 무너뜨렸다는 기록도 있다. 불싸움과 연날리기를 잘 활용한 전술인데, 이 기록이 맞는다면 그때에도 꽤나 새로운 전술이었을 것이다.

    한편, 「고려사」에는 연이 떨어진 집에는 액이 있다하여 왕이 벌을 내리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별이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떨어진 연을 불길하게 보는 일이 고려 시대부터 있었던 셈이다. 이처럼 연을 액의 상징으로 보는 관습은 조선시대에까지 이어진다.

    조선 시대

    연이 가장 극적으로 나온 때는 충무공 이순신이 전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육지에서 병선으로, 병선과 병선이 긴급하게 연락하는 통신 수단으로 연을 사용했다. 먼저 연에다가 글을 적어 아군 진영에 띄워 보내는 방법을 썼고, 또 바다에서 왜군과 싸울 때에는 서른 여 가지의 독특한 그림이 그려진 문양 연을 하늘에 띄워 신호연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조선 해군의 수많은 병선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신호연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신호연 방식은 탁월한 통신 연락 체계였다. 이순신 장군의 연전연승은 거북선과 같은 훌륭한 장비 덕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장군의 지략을 구체화하고, 전체를 하나처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신호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왜적을 가까이 끌어들인 다음 신호연을 날려 눈 깜짝할 사이에 학익진을 펼치는 장관은 상상만 해도 흥분된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연날리기는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바람을 이용해 연을 하늘에 띄우며 즐기는 전통 놀이 입니다. 하지만, 신라 김유신 장군에 의해서 비담과 염종의 반란이 일어났을때 월성에 큰 별이 떨어지므로, 왕이 두려워하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허수아비를 만들어 연에 달아 띄워 다시 하늘로 오르는것처럼 했고, 놀이로서의 도구일뿐만 아니라, 전쟁의 도구로도 사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