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기사들은 무거운 쇳덩어리 갑옷을 입고 어떻게 싸웠나요?
전투 방식은 주로 갑옷의 연결부를 찔러 상대를 거동 불능으로 만드는게 목적입니다.
드라마 같은데에서는 날을 이용해 목을 베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고 전방에 배치된 갑옷입은 보병이 상대 갑옷의 연결부를 찔러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면 후방의 도끼 부대가 지나가면서 쓰러져 있는 적의 목을 도끼로 쳐내는 방식으로 전쟁을 치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에서는 날이 발달한 도를 가지고 싸웠지만 유럽은 끝이 뾰족한 검을 이용하여 전투를 하였지요./
중세 유럽의 군대는 단 하나의 기본 전술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즉 기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중장기병 집단이 일제히 돌격하는 것이다. 중세 초기로 갈수록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지며, 14세기 초에도 보병은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중세 유럽에서는 대규모 전투가 거의 없었다. 크레시 전투(1346년)나 아쟁쿠르 전투(1415년)처럼 당시치고는 규모가 컸던 전투라도 고대 그리스나 로마, 또는 후세의 나폴레옹 시대의 전투와 비교하면 그 규모로 보나 병력수로 보나 매우 미미한 전투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선택할 만한 전술의 폭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게다가 봉건제도 아래 징집된 군대는 종종 무능한 지휘관 아래서 전투를 치러야 했다. 당시 지휘관은 개인의 능력보다는 가문과 출신 배경으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또 지휘를 받는 군대도 변변치 못했다. 그들은 정면 충돌해서 개인적인 전투 기술을 과시하는 것이야말로 기사도라고 믿고 있었다.
당시 대규모(당시 기준으로) 전투가 벌어질 경우, 전군은 '배틀(battle)'이라 불리는 집단으로 크게 분할되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기병을 중심으로 삼고 보병으로 하여금 보조하게 하는 혼성 부대로서, 보통 전위(van), 본대(main), 후위(rear)의 세 부대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이런 이름은 그야말로 이름일 뿐이고 전장에서 실제 부대 배치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전위라 해서 꼭 앞에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전투에 따라서는 3개 부대가 아니라 2개 부대로 나눌 수도 있었다. 배틀은 더욱 잘게 분할된다. 기병일 경우는 요즘 개념으로는 기병대대(squadron)로 나누어지며, 이것이 기본적인 전술 단위가 된다.
그렇다면 이 군대는 어떻게 싸웠을까? 먼저 중장기병대가 돌격1)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들은 사기도 높고 장비도 중장이었지만 훈련이 부족한 탓에 제대로 통제가 안되는 집단이었다. 기병의 돌격이라면 서부극을 자주 본 우리는 흔히 말을 탄 병사들이 무기를 휘두르며 집단으로 질주하는 장면을 떠올리지만, 중세 중장기병의 돌격은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당시 기사는 무거운 갑옷을 걸치고 있었고, 후기가 되면 말에도 상당히 무거운 마갑을 입히게 되므로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당시 중장기병의 돌격 속도는 빠른 걸음보다 그리 빠르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중장을 했다 해도 이렇게 느렸으므로 충격력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 위력에는 별 차이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화려한 갑옷으로 몸을 두른 중장기병이 우르르 몰려오면 방어하는 측, 특히 보병들은 분명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따라서 훈련이 잘 안 된 부대라면 적의 중장기병이 돌격하는 장면만 보고서도 기가 죽어서 전투하는 시늉을 하다가 금방 도망쳐 버렸을 것이다. 사실 돌격하는 쪽도 이것을 바라고 돌격했으며, 적이 호락호락 도망쳐 주지 않으면 그때는 오히려 돌격하는 기병 쪽이 위험해진다. 특히 적 부대로 돌입한 기병의 수가 많지 않으면 쉽게 고립되므로 이런 상황에서의 돌격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었다. 아무리 중장갑을 갖추어도 많은 보병들에게 포위되면 결국 말에서 끌어내려져 죽게 되거나 포로가 되는 사태2)를 피할 수 없었다. 따라서 첫 돌격에 적이 패주하지 않으면 적진 속으로 돌입하지 않았으며, 다시 돌격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후퇴를 해야 했다. 그런데 일단 돌격을 하고 나면 기병대의 대형은 완전히 흐트러지고 지휘 계통도 어지러워진다. 따라서 다시 돌격을 감행하기 위해서는 다시 집결해서 전열을 갖추어야만 했다. 그러나 기병이 재집결을 하는 동안 적 기병의 공격을 받으면 잠시도 버틸 수 없었으므로 보병이 이들을 방호해 줄 필요가 있었다. 보병의 역할은 바로 이것이었다. 당시 보병은 보통 창병과 석궁병으로 구성되는데, 창병들이 방패를 들고 빈틈없이 늘어서서 벽을 만들고 창을 겨누고 있으면 그 틈새로 석궁병이 사격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술이었다.
이것은 14세기 전반의 일반적인 전술이며, 15세기 후반이 되어도 유럽 여러 나라에서 계속 이용했다. 그러나 16세기가 되자 중장보병의 몰락을 예언하는 듯한 전술이 탄생한다. 잉글랜드의 대궁(롱 보우) 전술과 스위스의 장창(pike, 이후 '파이크'라고 표기함) 전술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