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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은 일제가 한국에 식민통치을 위한 기반 시설 확충을 1300만원의 차관을 강요하였습니다. 또한 차관 제공을 빌미로 간섭하였습니다. 이에 대구의 서상돈이 1907년 국채보상운동기성회를 조직하고 모금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특히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 기관이 앞장서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비록 일제가 대한매일신보의 양기탁을 공금 횡령죄로 탄압하였으나 일제의 경제적 침략에 대항한 우리 민족의 경제적 구국 운동입니다.
여러 자료와 상황을 종합하면 전체적인 모금 총액이 20만원이 넘지 못했던 것은 확실하고, 16만원에서 19만원 정도였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했습니다. 위의 기준에 따라 현재 금액으로 환산하면 40억원에서 48억원 정도가 됩니다. 물론 현재로는 3300억원, 1907년 기준 차관 1300만원의 1.5%를 넘지 못하는 수준이었으나 민중의 민족 의식 함양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