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등애가 사마의의 눈에 들게 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등애는 도위학사로 임명되었지만 말더듬이라서 간좌(문서를 다루는 각 부서의 보좌관)도 할 수 없어 도전수총초리가 되었습니다.
벼슬도 출세직이 아닌 농업 계통의 낮은 자리를 얻게 된 것입니다.
같은 군 관리의 부친이 그의 집이 가난한 것을 불쌍히 여겨 재물을 후하게 주었지만, 등애는 처음부터 사례도 표하지 않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무언가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능한 편으로 큰 산이나 연못을 보게 되면 군영 설치를 위한 그림을 그려두는 등 군사 운영적 측면에 관심이 많았다 하나 주변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습니다.
후에 전농강기가 되고 인구 및 공물의 통계를 내어 중앙에 보고하는 자리인 주의 상계리까지 올라갑니다. 상계리 시절 사마의를 만났고 후에 전농공조가 되어, 사자로 사마의가 있는 곳으로 가서 알려져 발탁된 것입니다. 그렇게 그의 눈에 띄어 처음엔 태위 밑의 연으로 임명된 후 더 잘했던지, 중앙의 상서랑으로 임명받는다. 이렇게 문관으로서 중앙 관직을 시작합니다.
사마의는 군사 이외의 방면에서 그는 궁궐 수리를 중단하는 등 근검절약에 앞장서 백성들의 환영을 받았다. 인재 선발에서는 등애, 왕기, 주진 등을 발탁하여 천하를 멀리 내다보고 경략하는 인재라는 평가를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