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이 일본에 볼모로 잡혀있던 이유가 뭔가요?
당나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전쟁 때 백제가 망한 후 백제 부흥운동이 있었을 때
복신과 도침은 일본에 있던 부여풍을 백제로 보내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근데 부여풍은 의자왕의 아들이라는데 왜 일본에 볼모로 있었던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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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여풍은 백제 의자왕의 아들로 백제부흥운동을 이끈 왕자입니다. 백제가 멸망한 이후에는 복신과 도침을 중심으로 부흥운동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부여풍은 왜에서 귀국(무왕 때 왜국으로 건너감)하여 백제 부흥군의 왕이 됩니다. 그러나 부흥군 내부에 분열이 일어나고 백강전투에서 나당 연합군에 패하자 고구려로 망명합니다. 고구려가 패망한 후 당의 포로가 되어 중국 영남지방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이후 생사는 알 수 없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는 일본에 선진 문물을 전래해준 국가였습니다. 실제 일본서기를 보면 왜로 건나가는 왕자나 사신들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기술자와 의학박사 등 많은 학생들을 대동했던 것입니다.
일본서기의 부여풍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혈오국사로부터 흰꿩을 받은 천황 코우도쿠가 부여풍에게 흰꿩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여풍은 태평성대를 뜻하는 이는 좋은 징조라 했습니다. 부여풍은 일본 천황의 자문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즉 부여풍은 왕과 잦은 자문 역할을 통해 백제왕의 모종의 외교적인 임무를 띄고 자주 접촉을 하면서 친백제노선외교를 추진한 근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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