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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얀굴뚝새243
뽀얀굴뚝새24323.09.25

위나라 황제, 조조는 어떤 인물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남편이 닉네임을 조조로 많이 사용합니다.

조조는 뛰어난 지략가라고 하더라고요.

그 시대 조조는 어떤 정치가였고 무슨 공헌을 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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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자는 맹적, 아명은 아만 , 길리이며 패국 초현사람으로 후한 헌제때에 승상을 지냈으며 위왕으로 봉해졌습니다.

    아들인 조비가 위나라 황제의 지위에 오른 뒤 무황제로 추존되었습니다.

    조조는 후환 황제때인 155년 태위를 지낸 조숭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조숭은 4대의 황제를 섬겨 환제 때에 비정후로 봉해진 환관 조등의 양자, 배송지는 진수의 삼국지에 주석을 달며 양자가 되기 전 조숭의 본성은 하후 였고, 따라서 조조와 하후돈이 종형제 관계라는 해석을 남겼습니다.

    어릴적부터 책을 즐겼으며 여러 분야에도 재능을 드러냈는데, 고대 병법가의 저술을 연구해 손자병법에 주석을 붙인 뒤 위무주손자라는 저술을 남겼으며 시부에도 뛰어난 성취를 보여 두 아들인 조비, 조식과 함께 삼조라 불리기도 합니다.

    20세때 174년 효렴으로 천거되어 낭관으로 관직에 올랐으며 낙양북부위, 돈구현령, 의랑등을 지냈고 184년 황건의 난이 일자 기도위로 임명되어 영천에서 반란군 진압에 공을 세워 제남의 동군태수로 임명되나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귀향했습니다.

    189년 영제가 죽은 뒤,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를 세워 정권을 장악한 동탁이 조조를 효기교위에 임명, 그러나 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낙양을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가 병사합니다.

    그는 190년 원술, 손견 등과 연합해 동탁 토벌을 주창하며 거병했으며 발해태수 원소가 맹주가 된 반동탁 연합군에서 분무장군의 직위를 맡았습니다.

    192년 동탁이 살해된 뒤 조조는 연주를 평정해 연주목으로 임명, 195년 헌제가 장안을 탈출했을 때 순욱의 건의에 따라 황제를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고 이 일로 조조는 건덕장군, 진동장군 등에 임명, 양조부인 조등과 마찬가지로 비정후로 봉해졌습니다.

    196년 자신의 근거지인 허현에 궁을 지어 헌제를 그곳에 옮기고 조조는 대장군으로 임명, 무평후로 봉해졌습니다.

    그는 헌제를 자신의 보호아래 둠으로 후한 조정을 장악, 황실의 권위를 배경으로 세력을 크게 확대할수 있었고 한호의 건의를 받아들여 둔전제를 실시, 제도를 정비하고 수많은 인재를 등용해 위 건국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202년 원소가 죽은 뒤 그의 아들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자 원소의 근거지인 하북지방 공략에 나섰고 207년 중국 북부를 통일, 208년 승상의 지위에 오른 뒤 중국 통일을 위한 남정에 나서 형주를 점령하나, 적벽에서 손권과 유비 연합군에 패해 형주의 일부를 도로 내주었습니다.

    그 뒤로도 조조는 여러 차례 관중과 한중 지역을 공략, 중국 통일을 시도하나 실패했고 213년 위공으로 봉해졌으며 216년 스스로를 위왕으로 봉하고 황제와 마찬가지의 권력과 위세를 행사, 220년 3월 15일 병으로 낙양에서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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