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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사랑이에요실금나와뚝방전설
모두가사랑이에요실금나와뚝방전설23.09.04

벚꽃축제는언제부터 생겨난 건가요?

안녕하세요.

언제부터 벗꽃축제가 활발하게 진행이 되었을까요?

어릴땐 없던거 같은데, 이게 봄마다 진행되는 전국행사가 된것이 신기합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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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0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헤이안 시대부터 궁정에서 즐긴 귀족놀이로 알려져 있는데 카마쿠라 시대 이후에는 무사집안 사이에서도 유행했으며 근세초기에 장군들이 벚꽃의 명소에서 현란한 의상을 입고 가무 등을 즐긴 호화찬란한 꽃놀이는 에도 시대 서민들이 즐긴 화려한 꽃놀이의 기원을 이루게 되어 서민들 사이에서도 꽃놀이가 활발해지게 되었다고합니다.

    우리나라는 1952년에 최초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우고 추모제를 지낸 것이 계기가 되어 문화예술행사, 벚꽃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봄 축제로 발전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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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벚꽃축제는 하나미에서 유래되었습닏.

    일본 후기 최초의 하나미는 812년 3월 28일 사가 덴노가 신천원에서 개최한 화연의 절이며 더 유래를 파고 들면 중국 당나라 시대에 동시기나라시대였던 일본이 당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 왕실에서 유교에서 좋게 본 매화, 복숭아꽃, 살구 꽃 등을 구경하고 놀던것이 시초입니다.

    그러다 헤이안 시대에 벚꽃으로 대체되기 시작, 이후 겐지모노가타리에서는 이미 하나미라는 단어가 벚꽃 구경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 하나미의 의미는 벚꽃을 구경하는것으로 보편화되고 가마쿠라 막부와 무로마치 막부를 거치면서 각 지방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라시대부터 전래한 삼짇날 꽃을 구경하고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부쳐 먹는 화류 또는 회취로도 불리는 화전놀이라는 세시풍속이 존재, 고려시대 장미연이 열렸고 조선시대 풍류문화의 봄의 상화, 여름에 연꽃을 감상하는 피서음, 가을에 국화를 감상하는 황국음, 겨울에 매화를 감상하는 매화음이 존재, 구한말 오얏꽃이 조선 왕실을 상징한다고 여겨져 사랑받았습니다.

    한반도에서 일반 대중이 대규모로 이동해와서 같은 장소에서 운집해 함께 벚꽃을 즐기는 의미의 벚꽃놀이가 시행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초반으로 서울 우이동 지역이 최초였습니다.

    한일병탄 이후 일제는 지배의 안정을 위해 조선 주민의 정치적 요구를 압살한 대신 관제문화를 조성해 순응시키려했고 벚꽃축제는 그 수단 중 하나였습니다.

    조선총독부는 기관지인 매일신보를 통해 벚꽃축제에 참여할 것을 장려, 이를 위해 임시 관앵열차를 운행하는 등 정책적으로 협조, 그러나 우이동은 도심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외곽이었고 그 규모도 당시 폭증하던 벚꽃놀이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했으며 당시 조선으로 이주하던 일본인은 벚꽃을 일본의 상징으로 간주해 조선에서도 하나미를 즐기며 향수병을 달래려하나 막상 조선에는 벚꽃이 별로 없어 하나미를 위한 일본산 벚나무의 식재를 관계당국에 꾸준히 요구합니다.

    이에 따라 일제는 과거 창경궁이었던 창경원에 벚꽃축제를 개최해 그 규모를 확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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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반도에서 일반 대중이 대규모로 이동해

    같은 장소에 운집하여 함께 벚꽃을 즐기는

    의미의 벚꽃놀이가 시행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초반, 서울 우이동 지역이

    최초였으며, 이후 남쪽으로 진해 군항제까지

    전국으로 많은 벚꽃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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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우리나라 벚꽃축제는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20년대에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일제는 조선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벚꽃을 조선의 상징으로 내세웠습니다. 일제는 서울의 창경궁과 남산공원, 경성역 등에 벚꽃나무를 대규모로 심고, 벚꽃을 감상하는 축제를 개최했습니다. 이러한 축제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조장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습니다.


    광복 이후에도 우리나라 벚꽃축제는 계속 개최되었습니다. 그러나, 벚꽃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상징하는 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축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1983년에는 서울의 창경궁에 심어져 있던 벚꽃나무가 시민들의 항의로 인해 베어졌습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벚꽃축제가 민족주의와 문화의 장을 마련하는 축제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벚꽃이 일본의 전유물이 아니라, 한반도 전역에서 볼 수 있는 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벚꽃축제는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표현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수백여 개의 벚꽃축제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벚꽃축제로는 진해 군항제, 여의도 봄꽃축제, 서울국제유아박람회 등이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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