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 서경덕은 어떤 업적이 있었나요?
율곡 이이,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성리학자로 불리는 서경덕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있는데요. 그 분의 간략한 생애와 어떤 업적을 남기셨는 지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전기 『화담집』을 저술한 학자입니다.
개성 출신. 본관은 당성(唐城). 자는 가구(可久), 호는 복재(復齋)·화담(花潭). 아버지는 부위(副尉) 서호번(徐好蕃)이며, 어머니는 한씨(韓氏)이다.
이(理)보다 기(氣)를 중시하는 독자적인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완성하여 주기론(主氣論)의 선구자가 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502년(연산군 8) 『서경』을 배우다가 태음력의 수학적 계산인 일(日)·월(月) 운행의 도수(度數)에 의문이 생기자 보름 동안 궁리하여 스스로 해득하였다. 1506년 『대학』의 치지재격물(致知在格物)조를 읽다가 “학문을 하면서 먼저 격물을 하지 않으면 글을 읽어서 어디에 쓰리오!”라고 탄식하고, 천지만물의 이름을 벽에다 써 붙여 두고는 날마다 힘써 궁구(窮究)하였다. 1507년(중종 2) 선교랑(宣敎郎) 이계종(李繼從)의 딸과 결혼하였다.
1519년 조광조(趙光祖)에 의해 채택된 현량과(賢良科)에 수석으로 추천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개성 화담(花潭)에 서재를 세우고 연구와 교육에 힘썼다. 1531년 어머니의 요청으로 생원시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성리학 연구에 힘썼다.
1544년 김안국(金安國) 등이 후릉참봉(厚陵參奉)에 추천하여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계속 화담에 머물러 연구와 교육에 몰두하였다. 특히 예학에 밝았으며, 중종과 인종이 죽자 “임금의 상(喪)에 어찌 복(服)이 없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여 자최삼월(齊衰三月)의 상복을 입었다. 황진이(黃眞伊)의 유혹을 물리친 일화가 전해지며, 박연폭포(朴淵瀑布)·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경덕 [徐敬德]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 자연철학자로 학문은 일정한 스승 없이 자습해서 이뤘으며 스스로 책을 읽고 깊이 생각하고 터득해 바람이 부는 이치와 온천이 뜨거운 까닭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려했으며 자연 속에 보이는 많은 수학적 질서에 주목하여 그 신비로운 비밀을 풀어내보려 힘쓰던 철학자 입니다.
우주의 생성과 그 변화가 모두 어떤 수학적 질서로 설명될수있다 믿고 그 이치를 알아내려 힘썼습니다.
그의 주기설에 따르면 인간의 삶과 죽음 자체가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에 지나지 않으며 새가 매일 조금씩 높이 날아오르는 이치도 또 온천이 있는 이치도 기를 가지고 설명하며, 조선의 상수학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경덕은 조선전기 『화담집』을 저술한 학자이다. 1489년(성종 20)에 태어나 1546년(명종 1)에 사망했다. 1519년 현량과에 추천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개성 화담에 서재를 세우고 연구와 교육에 힘썼다. 이후 어머니의 요청으로 생원시에 응시하여 장원 급제했으나 벼슬을 단념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氣) 바깥에 리(理)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리는 기를 주재한다. 여기에서 주재한다는 것은 밖으로부터 와서 주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기의 작용을 지시하여 그 작용이 바르게 저절로 그렇게 되도록 하기 때문에 주재한다고 하는 것이다. 리는 기보다 앞서는 것이 아니며, 기가 시작이 없기에 리도 본래 시작이 없다.- [이기설] 중에서
서경덕은 위와 같이 리가 기와 별도로 존재하면서 기를 주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 스스로가 기의 작용을 바르게 이끄는 내재적이고 자율적인 작용 원리이자 이치라고 보았다. 굳이 서양철학식 표현을 빌리면 리는 기가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기(氣) 내재적인 속성’ 또는 ‘내재적 원리’에 가깝다. 서경덕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 ‘기(氣)일원론’, ‘유기론’(唯氣論), ‘주기론’(主氣論) 등으로 일컫기도 하지만, 이른바 주리(主理)와 주기(主氣)의 이분법이 유학의 이기론을 설명하는 틀로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의문과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사실이다.
‘죽음과 삶, 사람, 영혼은 다만 기(氣)의 뭉침과 흩어짐일 뿐이다. 모이고 흩어짐은 있을지언정 있고 없음은 없다. 그것이 기의 본질이다.…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같은 것일지라도 그 기는 마침내 흩어지지 않거늘, 하물며 사람의 정신 지각처럼 크고 오래 걸려 뭉쳐진 것이랴.…비록 한 조각 촛불의 기가 눈앞에서 꺼지는 것을 보더라도, 그 남은 기는 끝내 없어지지 않는다.’- [귀신사생론] 중에서
서경덕의 위와 같은 입장을 접하고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나 질량 보존의 법칙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기론을 서양의 자연과학에 직접 견주는 것은 무리다. 그 배경과 맥락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서경덕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방편적으로 유용한 것만은 사실이다. 서경덕의 이러한 입장을 가리켜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유물론에 가깝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실체를 물질로 보느냐 정신으로 보느냐 하는 유물과 유심의 틀은 어디까지나 서양 형이상학의 맥락이라는 점에서 ‘서경덕은 곧 유물론’이라는 등식에는 무리가 있다.
율곡 이이는 서경덕의 학문이 독창적이며 특히 기(氣)의 미묘한 측면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서경덕이 기(氣)를 리(理)로 알고 있는 병통을 지녔다며 비판한다. 퇴계 이황은 서경덕이 기(氣)를 리(理)로 잘못 알고 있으며, 사실상 기(氣)의 불멸을 주장함으로써 불교의 미망에 빠졌다고 비판한다. 본래부터 우주에 편재되어 있는 도덕적, 윤리적 원리이자 본성으로서의 리(理)를 강조하고자 했던 유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리를 내재하고 있는 자연 그 자체로서의 기(氣)를 강조한 서경덕이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이황과 이이가 자연-도덕주의자였다면 서경덕은 자연주의자에 가깝다.
[네이버 지식백과]서경덕 [徐敬德] - 독자적인 학문의 길을 걸은 조선의 대표적인 처사(處士) (인물한국사, 표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