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광해군은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정통성에 집착했습니다. 즉위 초에 명나라가 광해군을 국왕으로 승인하지 않자 막대한 뇌물을 사신에게 주고 승인을 받았습니다. 또한 왜란의 피해가 아직인데 궁궐을 많이 건축하여 민생을 피폐하게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광해군은 군용 재정을 궁궐 건축에 돌려 쓰기도 했습니다.
또한 영창대군을 의식한 나머지 계축옥사라는 무리수를 두었고, 자신의 생모를 왕후로 높이고 인목왕후는 격하시켜 서궁에 유폐하여 스스로 유교적 가치관과 윤리를 저버린 폐륜아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광해군은 자신을 지지했던 북인들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북인은 반대세력을 가차 없이 배제하고 제거하여 독단적인 정치 운영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광해군이 각 붕당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광해군 시기에 선혜법이라 하는 대동법이 시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방납업자 및 지배층 간에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탓에 대동법의 확대 시행에 반대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법을 아예 폐지시키려고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폐위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