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왕족이 신라의 왕이 될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신라에 의해 멸망당한 나라가 가야인데 보통 멸망 당한 나라의 왕족들은 사형을 당하거나 볼모로 잡혀 대우가 좋지 않을텐데 어떻게 가야출신의 왕족이 신라의 왕이 될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법흥왕은 적극적인 남진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522년(법흥왕 9년) 가야국의 왕이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였다거나 524년(법흥왕 11년) 법흥왕이 남쪽 변경 개척지를 순행하고 있을 때 가야국의 왕이 찾아왔다는 사료가 이를 말해 줍니다. 이미 법흥왕 대에 이르면 양국 간의 힘의 균형이 깨어지고 신라가 우위를 점하는데, 신라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금관가야 김구해는 마침내 532년(법흥왕 19년)에 신라에 항복하였습다. 사료에는 김구해에게 본국을 식읍으로 하사하였다고 하지만, 삼국유사 권2의 「가락국기」에는 그의 동생인 탈지에게 김해의 실질적 지배를 맡겼다고 전합니다. 즉 법흥왕은 항복해 온 금관가야의 왕에게 본국을 식읍으로 하사하여 마치 우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김구해 일가를 경주로 이주시켜 금관가야를 완전히 해체시킴으로써 혹시나 일어나지도 모를 반란의 불씨를 애초에 제거하고자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듯 법흥왕은 안으로는 관제를 신설하고 율령을 반포하여 국가 체제를 정비하는 동시에 밖으로는 금관가야를 복속시키는 등 영토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와 같은 법흥왕의 자신감은 건원이라는 독자적인 연호의 사용으로 이어졌습니다. 연호의 사용은 대내적으로 강력한 왕권이 확립되었음을 공표하는 기념비적 조치이자, 대외적으로는 신라가 중국과 대등한 국가임을 과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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