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로고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고혹한 쇠똥구리
고혹한 쇠똥구리23.11.04

설날에 떡국을 먹는 문화는 언제부터였나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1월 1일 설날이 되면 떡국을 먹는 문화가 있잖아요. 이런 문화는 언제부터 어떻게 어떤 이유로 생기게 되었나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1.0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설이 언제부터 우리의 명절이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7세기에 나온 중국의 역사서 《수서》와 《구당서》에서 우리나라의 설에 대한 최초의 구체적인 기록이 나옵니다. 이 문헌들의 신라 관련 기록에는 "매년 정월원단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날 일월 신을 배례한다."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또 《삼국사기》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년)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년)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참배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는 문화는 순백의 떡과 국물로 지난해 안 좋았던 일을 모두 잊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흰 가래떡을 길게 뽑는 이유는 장수와 집안의 번창을 의미하고, 가래떡을 둥글게 써는 이유는 옛날 화폐인 엽전의 모양과 같도록 해 운세와 재복이 한해 동안 계속 되기를 기원하는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헌종 15년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에 떡국을 병탕, 백탕이라 소개, 즉 떡의 모양이 희다고 하여 백탕,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 하여 병탕이라 했습니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습이 언제부터인지는 알수 없으나, 조선시대 역사 문헌에 설날 아침에 반드시 떡국을 먹었다고 전해지며, 손님이 오시면 대접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를 살펴보면 떡국을 백탕 또는 병탕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겉모습이 희어 백탕이라 했으며 떡을 넣고 끓여 병탕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이를 물을 때 병탕 몇 사발을 먹었느냐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떡국을 왜 먹었을까요 이는 오래 전부터 조상들이 먹어 온 음식을 기록한 열양세시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떡국은 새해 차례나 설 음식에 없으면 안될 음식으로 설날 아침에 반드시 먹었으며 손님이 오면 반드시 대접했다고 합니다. 즉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습은 옛부터 내려온 것으로 제사 때 음복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새해에 먹던 떡국은 순백의 떡과 국물로 지난 해 안좋았던 일을 잊어버리고 새해를 새롭게 시작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