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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친칠라280
대단한친칠라28023.03.08

조선시대 한양의 4대문은 무엇인가요?

조선시대의 수도인 한양에는 4개의 큰 관문이 있었고 이를 4대문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남대문인 숭례문과 동대문인 흥인지문은 알고 있는데 나머지 2개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언제 사라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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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08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한양 도성의 사대문은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북대문이며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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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쪽에 흥인지문.

    원래 이름은 흥인문입니다. 그런데 문의 이름에 갈지(之)자를 넣은 것은 동대문이 위치한 낙산의 지형이 낮아 갈지(之)자를 넣어 약한 기운을 보완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또 흥인지문에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둘렀다고 하구요. 지금도 볼 수 있는 이 옹성은 적들을 효과적으로 막아 내기 위한 기능 이외에, 건축적으로도 매우 아름답습니다.


    서쪽에 돈의문.(현재는 없는 문)

    돈의문은 시대에 따라 서전문, 신문, 새문으로 불리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서대문으로 불러왔어요. 조선시대 5백년 간 중국과 통하는 관문이었죠. 조선말에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친일정권을 형성하는 데 방해가 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킬 때, 바로 이 돈의문 앞에서 흥선대원군과 불량배들을 끌고 들어왔어요. 일제 침략기 때 시구역 개수계획이라는 명분으로 헐리고 말았죠. 일제는 돈의문의 목재와 기와를 경매하였는데 그 속에 불상과 보물이 많이 나와서 이 문을 샀던 사람은 큰 횡재를 하였다는 일화가 있죠.


    남쪽에 숭례문.

    도성의 문의 현판은 모두 가로로 쓰여져 있으나, 숭례문은 세로로 쓰여져 있어요. 이것은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한 것입니다. 바로 보이는 관악산이 불꽃모양을 한 화산(火山)의 형태이므로 경복궁에 화재가 나기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현판 글씨는 양녕대군이 쓴 것으로 추사 김정희도 이 현판글씨를 보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북쪽에 숙정문.(평상시 닫혀있던 문)

    원래 이 북쪽문은 지자를 빼고 청(淸)자를 넣어서 숙청문이라고 하였어요. 그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북쪽문은 지형이 험난하여 사실상 사람이 왕래할 수 없었으며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항상 닫혀 있어 굳이 지(智)자를 쓸 필요가 없었답니다.


    이상입니다. 지식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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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나머지 두 대문은

    서대문, 돈의문으로 1915년에 철거 되었고요.

    북대문, 숙청문이라 했는데, 뒤에 숙정문으로 바뀌었습니다. 숙정문은 지금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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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정한

    한양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소문(小門)이 있었다.

    4개의 대문은 유교의 오상(五常)인

    인의예지신(仁義禮知信)에 의해,

    동쪽에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에 돈의문(敦義門),

    남쪽에 숭례문(崇禮門),

    북쪽에 숙정문(肅靖門)을 두었다.

    그리고 중앙에 해당되는 곳에 보신각(普信閣)을 두어 도읍의 기본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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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 입니다.

    창의문:한양 도성의 북서쪽에 있는 문으로 지하문이라고도 한다.

    숙정문:한양 도성의 북쪽에 있는 문으로 최근에 개방 되었다.

    혜화문:흥인지문과 숙정문 사이에 위치한 북방으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하였다.

    숭례문:국보 제1호로 조선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녀 남대문이라고도 한다

    흥인지문:보물제1호로 한양 도성의 동쪽 정문이며 동대문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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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양은 4대문-4소문으로 구성되어있고,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북대문으로 알고있는데,

    옛 지명을 보면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홍지문 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한양도성이 철거되기 시작했고 숭례문의 서쪽과 동쪽의 성곽이 헐리게 되었습니다.

    실권이 일본에 넘어간 대한제국 말부터 일본은 도로 확장을 이유로 교통을 위해 숭례문도 철거하려 하나 숭례문이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지나온 성문이라는 이유로 보존했습니다.

    즉, 일제는 돈의문 등 조선의 왕성인 궁궐과 성곽을 항일의 상징으로 보고 파괴했으나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숭례문을 열고 지나갔으며 고니시 유키나가 흥인지문을 열고 지나갔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가 있다며 보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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