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탐라는 935년 신라 멸망 후 잠시 독립을 되찾았다. 그러나 938년 고려에 복속되었는데, 제주 고씨의 전승에서는 민왕(岷王, 908~933)이 이미 고려에 사신을 보내 방물(方物)을 바쳤다고 적고 있다. 자견왕(933~938)이 왕자 양차미와 함께 938년 12월에 태자 고말로를 고려에 보내 입조시켰고, 고려 태조는 말로에게 성주, 왕자 작위를 제수하고 탐라의 궁실을 성주청이라 개칭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1105년 탐라군이 설치되고 1121년 제주군으로 개칭되며 고려에 정식으로 편입되었고 1153년에는 탐라현으로 강등되었지만, 성주, 왕자 등 옛 지배자의 칭호들이 인정되는 등 한동안 지방 자치권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1168년 양수의 난과 같이 고려의 경내관에 대한 제주인들의 반란이 여러 차례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1271년 원나라에 항거하던 고려의 삼별초들이 탐라에 침입하여 탐라 지배층을 몰아낸 후 탐라를 원나라에 저항하는 거점지로 삼았습니다. 1273년 원나라는 제주도에 남아있던 삼별초 세력을 제거한 후 1275년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여 원나라의 직할지로 삼고 말들을 기르는 목장들을 세웠으며,[38] 원나라는 몽골군을 탐라에 파견하여 수비대와 말을 몰게 하였는데, 제주인들은 이들 몽골군을 목호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1294년에 원 성종이 즉위하자 원나라는 고려 국왕의 요청에 따라 탐라를 고려에 반환하고 원과 고려의 공치하에 두었는데, 1368년 원나라가 멸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서자 1374년에 목호의 난이 일어났고 고려는 25,000명의 군대를 보내 목호들을 학살해 난을 진압한 후 탐라를 다시 고려의 직할지로 삼았습니다.